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다가 고등학교 시절 에피소드가 문득 떠올랐다. 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흡연에 얽힌 내용이 이어졌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돌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학생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되나요?”
그래, 생각해보니 왜 학생은 담배를 피우면 꾸지람을 듣고 매를 맞을까? 흡연행위 자체가 악한 행동인가?
선생님의 대답은 간명했다.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 인마,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데? 그걸 너희 나이 때 피우면 뼈가 다 녹는다.”
하지만 납득은 쉽지 않았다. 과연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건강을 보살펴 주느라 흡연을 적발하면 때렸던 것일까? 몸 상하지 말고 건강하게 살라고 그렇게 몽둥이로 학생들을 패댔던 것일까?
시시때때로 흡연 학생을 잡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고, 적발하면 몽둥이질을 하던 시기였다. 그 몽둥이질에서 학생의 건강을 걱정하는 스승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내 감수성 탓이라면 할 말은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흡연 학생에게 몽둥이질하는 교사들의 눈빛은 이랬었다.
‘이런 건방진 자식.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담배를 피워대?’
정말로 학생들의 건강을 위했다면, 몽둥이질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의 해악을 제대로 설명해주고 끊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온당하다. 대부분의 학생이 몇 대 맞았다고 해서 담배를 끊었을 리도 만무하다.
어쩌면 학생들을 체벌하던 교사 중 상당수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관성적으로 그랬을 수 있다. 흡연이나 음주만큼 간편하고 확실한 체벌의 핑계가 또 어딨으랴? ‘건강’이라는 핑계로 ‘체벌’이라는 통제 권력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왜 통제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흡연하면 체벌’이라는 무조건 반사 작용만 남게 되었다. 목적은 망각하고 수단만 행해진 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이 ‘왜 학생은 흡연하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었다.
1970년대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단속하던 경찰들은 과연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긴 치마를 입고 다니면 정말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었을까? 그런 질문은 사라지고, 지시를 받았기에 반사적으로 수행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맹목적인 통제 수단들이 어딘가에서 행해지고 있을지 모른다. 관성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으면 또 다른 무조건 반사 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덧붙여 고등학교 시절 맘에 안 들었던 점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은 우등생들이 흡연하다 적발됐을 땐 체벌 수위가 극히 낮았다는 사실이다. 훈계 몇 마디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어쩌면 그렇게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건강만 극진히 위해 주셨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