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믿음

by 휴찬

8년째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 손에 자라서 당연히 애교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여전히 신기하다. 배를 까 뒤집고 가슴 부위를 조몰락거려도, 턱 밑에서 목을 쓸어내리며 힘을 주고 눌러도, 꼬리를 붙잡고 빙빙 돌려도, 민감할 것 같은 급소 부위들을 마구 만지는데도 기분 좋다며 ‘갸르릉’거리기만 한다. 곁에 있는 인간이 자신을 해할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없다.


어쩌다가 발치에 와 있는 걸 모르고 발등이나 꼬리를 잘못 밟아도 얕게 ‘끄응’ 소리를 낼 뿐, 자신을 공격한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단지 실수였다는 걸 다 아는 듯한 눈빛. 완전한 신뢰관계라고 해야 할까?


예닐곱 살 꼬마 때도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자라면서 다소 방어적으로 나를 대했다. 불만이 있었던 것인데, 시간이 흘러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동물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서툴렀다. 귀엽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꼬옥 붙잡고 안아서 고양이가 불편해 하는데도 놓아주지 않곤 했다. 고양이는 참다가 내 품을 뛰쳐나갔고, 그 과정에서 내 손이나 팔을 할퀴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화가 나서 꼬리를 슬쩍 밟고 도망가는 식으로 복수했다. 그렇게 고양이는 점점 나를 믿지 않게 되었다.


길고양이들의 습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길고양이와의 공존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힌 나라에서는 대로변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불쑥 다가가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다가와서 무릎에 얼굴을 비비기도 한다.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쌓인 행동방식.


반면 한국에선 먹을거리를 좀 주려고 불러도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고함을 치거나 위협하며 내쫓는 사람들을 접해봤기 때문이다. 이런 고양이들에게 사람이란 동물은 경계의 대상이다.


간혹 한국의 길고양이와도 같은 사람들을 마주치곤 한다.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 도망가듯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언제든 벽을 쌓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그 경계심의 출발점이 어디였을지 헤아리면 먹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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