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신문사의 취재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여러 출입처를 드나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다. 나는 새파란 신입이었지만, 밖에서는 누구나 다 나를 ‘기자님’이라 부르며 조심스럽게 대했다. 기관이나 기업에 인터뷰 요청을 하면 팀장급 또는 그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상대했다. 언론보도를 전제로 한 공식 채널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학 교수들도 깍듯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취재증을 목에 걸고 국회에 들어가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고 많으시다’며 여기저기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기자를 그만둔 후에야, 간부가 아닌 평사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직종을 바꿨으니 말이다. 또한 이른바 ‘을’의 입장에서 업무를 진행해본 것도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협력업체 소속으로 원청 대기업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엔 굉장히 낯설었다. 달라진 환경이 이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었다. 나에게 늘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던 그 지위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내게 지시를 내렸다. 기자로 일할 때는 거절 의사를 보여도 “당연히 저희가 식사 대접하겠다”고 하더니, ‘을’이 되자 “협력업체 사람이 술 한번 안 산다”며 투덜댄다.
그런 업무 체계와 분위기쯤이야 별문제 없다고 여겼지만, 무척 불편한 지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때때로 내게 (그리고 나와 엇비슷한 직급의 사람들에게) 전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말투로 지시를 한다는 점이었다. 어떨 땐 마치 중고등학교 교사가 학생을 나무라고 훈계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진행요원을 맡은 어떤 세미나 행사에서는 처음 대면하는 대학교수가 대뜸 반말로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만일 내가 프레스 카드를 목에 걸고 카메라를 쥐고 있었더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시 언론사로 재취업하여 기자 명함을 들고 이들과 대면한다면 어떨까? 또 당연하게도 그들은 내게 ‘기자님’이라 부르며 예의 갖춰 인사할 것이다. 실제로 나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갑’이 내 또래의 현직 기자를 귀빈처럼 모시는 광경을 본 적도 있다.
우스웠다. ‘나’라는 존재의 인격이 달라진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명함이라는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나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대신했다.
사이비 언론사들이 기자 명함 발급을 남발하는 이유다. 사업가들이 미사여구로 포장된, 허세 가득한 소개서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기꾼들이 유력 정치인이나 경제인, 혹은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들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수식어 앞에 너무 쉽게 무릎을 꿇어버린다. 아무리 헛소리를 지껄여도 그가 유명인사라면, 사람들은 그 헛소리를 인용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오보들이 전문가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쓰다가 발생하기도 한다. 권위자의 뻔한 소리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비전문가 친구의 날카로운 의견에는 콧방귀를 뀌고 만다.
이로 인해 전문적인 식견과는 전혀 상관없는 ‘껍데기 전문가’가 탄생하기도 한다. 누군가 자극적인 콘텐츠로 주목을 끌어 이른바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면, 그는 곧 전문가로 추앙받기 시작한다. 전문지식의 유무보다 명함에 적힌 타이틀로 전문가 순위가 정해진다. 하긴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위증 한 장만 위조해서 보여주면 ‘박사’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니 ‘껍데기 전문가’ 정도는 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한 인간의 명함 앞에 엎드리는 법은 배웠어도, 그 인간의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법은 잘 알지 못한다.
- 사족 -
기자 생활을 하다가 IT 기획자로 전직할 때, 동료 기자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부럽다. 나도 기술만 있으면 다른 일 하고 싶다. 내가 어쩌다 기자질을 시작해 가지고... 박봉에 일만 많고, 힘들어 죽겠다.”
IT 회사의 동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세상에? 기자까지 했던 사람이 왜 이런 데를 와요? 내가 어쩌다 IT 일을 시작해 가지고... 여기 완전 3D 업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