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담채라이프18.비움일기 2

일단 다 꺼내는 것이 시작이다. 정말 이건 기본이다.

by 채영신

사실 시작이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게 정말 여러 경험치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을 어떤 일이든 해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청소와 정리는 정말 시작이 반이다.


일요일 저녁 나는 내내 머리로 정리했다.


이번 정리와 비움에서 어떤 것을 비워내고 어떤 기준으로 정리를 할지 내내 생각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우리 집에 우리가 사용하는 것만 남기는 것!


4인가족이 사는 공간에서 완벽하게 미니멀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미니멀라이프를 주도하고 있는 나의 욕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수선스럽지 않은 공간''할 일에 완벽하게 집중하는 공간'이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책이길 바라지만 주방용품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 집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인가 보다. 잘(많이) 먹기도 하지만 정말 잘(질 좋은 걸 잘) 먹으려 하는 탓에 외식보다는 집밥이다.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간 월요일 나는 아이들에게 잘 다녀와 인사를 하자마자 식탁에 주방 찬장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한시라도 지체하면 큰일 난다는 듯 빠르게 물건을 뺐다.

여러 번의 이사로 나의 주방살림은 꽤 정리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물건을 모두 빼는 일이 그리 버거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줄이고 줄여낸 살림이었기에 이번에는 모두 다 덜어내기보다는 우선 정말 매일 사용하는 제품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비움대기'목록으로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당근마켓의 앱에 하나하나 사진을 올리거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할 물건을 박스에 넣어가며 정리를 시작했을 테지만 지금까지 우리 집에 남은 물건은 그래도 나에게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몇 개월 정도만이라도 보관해 보기로 했다.

냉장고 윗장에 '비움대기'조들을 올려보기로 했다.


수저세트며 식기세트를 기본 6인조를 비치해 두었었다. 부모님이 놀러 오시는 일을 생각하고 그렇게 했던 것도 있고 아이들 아빠가 출근했을 때 딸들과 나만 밥을 먹게 될 경우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분량을 설정해 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님과 우리 집에서 밥 먹는 일은 현격히 줄고 있고 추구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나만 밥을 먹게 되는 경우에는 빠르게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6인조가 나와있을 이유는 없었다. 재빠르게 4인조만 두고 나머지는 혹여 깨지거나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따로 정리했다. 이외에도 세트 구성안에 있다는 이유로 서랍을 차지하게 두었던 조리도들도 일단 모두 꺼내 조리할 때 매일 사용하는 제품인지 체크했다.

사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꺼내두고 사용하는 것이 사용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물건=관리 이기 때문에 내가 재빠르게 움직임으로서 관리할 물건이 줄어든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다.


한 번씩 대청소를 할 때 서랍 속 먼지들도 닦아내기 수월하다.


나는 안다.


남편이 주말요리사를 자청해 줄 때 번거로워할 거라는 것을.


그간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지 싶어 남편이 코팅프라이팬이나 에어프라이어 같이 편리함을 표면에 내세운 제품들에 대해 요구하면 구입하는 일이 꽤 있었지만 번번이 살림의 주도자인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의 불편함이 불편하지 않도록 차라리 내가 빠르게 보조를 하거나 잘 설득하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행동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맞다. 어느 부분에서는 내 욕심을 채우는 이기심이지만 그냥 내가 우리 가족 중에서는 살림분야에 가장 익어있기에 노하우를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편한 방식의 살림임을 알려주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굳히면서 이제 무엇을 더 구입하고 말고의 문제가 나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 집, 이렇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더 가벼이 더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