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24. 즐거운 오늘

나도 즐기는 오늘을 살아보려 한다.

by 채영신

나의 무거운 기운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스스로 어디서든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여덟 살이었다.

스스로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고 잘해야 한다고 믿었고 주변의 잘한다는 믿음도 쌓인 아이였다.


그렇게 몇 년을 쌓고 쌓아 나는 정말 그런 ‘이기는 사람‘이 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경쟁자는 없었다.

4학년에 나타난 남자 녀석 하나가 내가 생각하는

초등학교 6년간 만났던 아이들 중 유일한 경쟁자였는데,


그 마저도 나와 성별이 다르고 유쾌한 그 녀석의 성격 덕분에 어찌어찌 협업의 형태가 되어

경쟁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마흔, 지금의 나도 이럭저럭 괜찮다.

아마 집안에서 우리 집을 온전히 가꾸는데 집중하는 것이 체질에 맞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집을 가꾸는 일이 꽤나 적성에 맞는다.

이걸 ‘적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종종 맞나?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볼이 붉어지는 일이 있지만

휴양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간들을 쌓아가는 일이

나에게는 꽤 훌륭한 경험이다.


집에 이름을 붙이고, 우리 집 다운 수건을 고르고,

호텔어매니티를 고르듯 신중하게 워시류들을 고르고,

향을 채우는 과정들이

유난하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컨셉과 몰입은

정신건강에 나쁘지 않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중반까지의 날들은 나는 참 나 스스로의 날들이 힘들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의무들이 쏟아졌고 이에 등 돌리고 나의 길을 찾을 줄 몰랐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회사에 입사도 잘했지만

정 붙일 곳이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에 정 붙일 곳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동기도 없고 사수도 없는 형태의 직장은 쉽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에게 뭇매를,

예리한 눈짓과 칼날을 던졌던 사람들에게

와악하고 소리치고 싶다.


명확하게 싸움을 거는 것도 아니고 형체도 없는 괴로움을 주는 것이 그 기운과 파장이 싫었노라고.

하지만 그것들을 뿌리칠 만큼의 나의 기운보호막이

없었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어쩌면

더 화가 나는 일이다.


나의 인생은 내가 잘 갈무리하고 가꾸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더 크다.


그런 것들이 발목을 잡으며 나는 꽤 오랜 시간 나는 행복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 같은 것들을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냥 마냥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 같은 것이 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한 것 같아서?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은 참 많이 건강해진 것이고,

그 간은 내 어깨에 얹어진 부모님들의 시선이,

늘 적으로 있던 친척들의 시선이

내 위에서 동동 떠있는 것 같아서 두렵고 미안했다.


하지만 집을 가꾸며 내가 꾸린 가정을 돌보며

나는 나를 보았고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웃고 싶다.


사소한 일상이 나에게 자신감을 채워주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연

나는 옷장을 재정비했다.

그간 비워내고 비워내며 사실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

섣불리 채우고 다시 비워내는 악순환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비워내기만 했다.

속옷류와 매일 입고 빠는 간단한 일상복을 제외하면

근 10년간 제대로 옷을 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에서 일부 비율을 조정해 코트와 구두 스카프 백을 구비했다.

명품백 하나를 기념으로 남기자는 남편의 말로

그간 눈여겨보던 가방을 유심히 보았지만

가방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전체적인 나다운 룩을 완성하고 싶었다.


스타일을 구경만 하고 보내온 그간의 세월이 참 잘했다 싶게 나는 물건을 척척 잘도 골랐다.


물건을 척척 고르고 그 물건값을 아깝다 생각지 않고

잘 치르는 나의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나 이제부터 잘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나를 파악하고 있고 내가 갈 방향에 대해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쇼핑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늘 나는 무엇을 사면서도 ‘이게 맞나?

내가 이런 걸 사도 되나?’라는 생각이

80프로 이상이었다.

심박이 오르고 입이 바짝 마르면서도 구입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것을 사야 할 것만 같아 나와의 어울림이나 우리 집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번에도 대단한 명품백 하나를 골라 구입했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커다란 다이아보다 실버를 좋아하는 나인 것처럼

반짝이는 것보다 은은하게 녹아나는 내가 되고 싶다.


2026년 올해, 나답게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