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사는 건 덧없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산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가끔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다. 여기 그 정점에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이름- 사노 요코. 직업- 그림 동화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그녀는 두 번의 이혼을 했고 마흔의 아들을 두고 있다. 유방암이 발병해 한쪽 가슴을 잘라 냈으며 그런데도 병이 전이되어 버렸다. 그녀는 치과에 몇 백 엔을 갖다 받치기도 했으며 시한부 통보를 받은 날 모아 놓은 돈으로 재규어를 샀다. 매일 뭐 먹을지를 걱정하고 나쁜 할머니처럼 보일까 전전긍긍 대지만 그래도 자신을 찾아 주는 친구들이 있어 고마워한다.
책 '사는 게 뭐라고'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사노 요코와의 대담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이 든 묘한 이 할머니에게 어느새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라디오였다. 흘러가는 말로 "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에 따르면..." 이런 투의 언급 정도였다. 하지만 난 뭐에 홀린 듯 휴대폰의 메모 앱을 켜고 책 제목을 적어 두었다. 나중에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몇 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샀다. 딱히 뭐 읽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터라 어떤 책이든 상관없었다. 단지 당시에 내가 "꼭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다는 것만으로도 책을 선택한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녀의 글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표하는 그림 동화책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책을 재작년쯤 봤었다. 그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떻게 죽어도 곧 살아나던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를 우연히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백만 번 산 고양이는 죽어라 통곡하고는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사랑에 관한 짧은 우화. 그래서일까 '사는 게 뭐라고'에서도 사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끝 부분쯤 나오는 데 화사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오는 추천 글을 보면 사노 요코가 말한 “화사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편하다.”라는 말이 고마운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울림을 줬던 부분은 오히려 그녀가 화사함에 빠져들 때였다. 특히 한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진료를 받으러 갈 때, 젊은 의사가 자기의 무릎을 만지는 것을 적었을 때는 영락없는 소녀인 사노 요코만 보였다.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쁨을 기쁨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야 말로 그녀가 가진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물론 그 직후에는 다시 쭈구리처럼 나이의 이야기로 빠져서 한숨 쉬는 상황으로 나오지만 그녀의 솔직담백 한 서술 자체가 귀엽다.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는 그녀의 툴툴거림을 보는 게 아닐까 한다. 그녀는 작은 거 하나에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자기가 즐겨 만드는 리버 페이스트는 그녀 친구의 애인한테 배운 비법이다. 그리고 그걸 배운 시기도 그 애인이 친구와 헤어지기 직전에 "아, 둘이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 그러기 전에 배워야 해!"하는 심정으로 급하게 전화를 해 배웠다고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애인이 친구랑 헤어져 딱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사노 씨랑 안 봐도 된다 거였다.
사노 요코가 2004년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에세이를 모아 놓아서 그런지 책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이 자세히 나온다. 특히 암보다 우울증을 더한 병으로 서술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암이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눈을 끔뻑거리며 친절하게 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셋 중 하나는 암으로 죽는다. 당신들도 시간문제야.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 몇 배나 더 힘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몇 배나 더 차가웠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점점 없어져 갔다. 사람들이 없어지게끔 내가 변하는 것이다.... 중략... 내 우울증은 평생 낫지 않는다. 지금도 앓고 있다.
-112페이지-
이런 그녀만의 통찰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 책에서 자기를 인정하게 된다.
‘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 나면 사노 요코의 일상을 쭉 보고 온 느낌이 든다. 그녀의 감추고 싶은 속마음, 흥미 그리고 밥을 먹는 일상까지도 이 책에서는 다 나와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구절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에세이를 읽다 보면 뭐라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멍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에세이라는 것이 일기랑 다를 게 없다. 자기의 생각을 적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가 곧 에세이다. 대학교 은사님 중 한 분은 에세이에서 글을 줄이고 비유를 추가하면 시가 되고 서사를 더하면 소설이 된다고 했다. 그만큼 에세이는 주관적 글쓰기다. 결국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그 글을 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건 자기 자신을 다양한 상황에 맞춰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는 과정이지 싶다. 책의 첫 구절에서도 그랬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남에게 잘 보이게 위해 더 꾸밀필요도 없고 그냥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