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흔히 우리나라를 보고 ‘한강의 기적’이라 말한다.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가 몇십 년 만에 놀라울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을 보고 세계는 놀랐다. 그러나 그런 급격한 변화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옆 나라인 중국은 더 극격한 성장으로 이제는 G2의 대열에까지 올라갔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빠른 성장에는 그만큼의 후유증도 동반한다. 빈부격차, 황금만능주의, 인권 무시와 탄압 등 중국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저자인 ‘위화’는 어린 시절 마오쩌둥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니 당시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 있었을까마는 특히 그는 인민 = 마오 주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그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5월 35일 때문이다. 당시 천안문에서는 시위가 일어난다. 하지만 당에서는 이런 시위를 그냥 두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 상으로 천안문 시위가 일어난 6월 4일은 지워지게 되었다. 그러자 중국 네티즌들은 새로운 날짜를 만들어 냈다. 5월 35일이 바로 그것이다. 6월 4일이라 적으면 글이 삭제되거나 입력이 안 되는 것을 대비해 오히려 없던 날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사태는 최근에도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시주석을 닮은 ‘곰돌이 푸’가 금지된 것이다. 이런 일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저자는 주석=인민이라는 자신의 의견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니 책에서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안 나온다. 오히려 너무 진지한 팩트만 열거할 뿐이다.
때마침 천안문 사태 때 저자는 그 시위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사람의 목소리가 빛보다 멀리 간다’는 사실이다. 이 문구는 사실 중국 나름의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빛이 소리보다 멀리 간다는 것은 현대에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거꾸로 뒤집으면서 사람의 목소리, 그 처절하면서도 강한 외침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멀리까지 퍼지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재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유명 작가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글쓰기와 책 읽기가 왜 발달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는 문필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결핍에 따른 노력으로 그 능력을 키웠다. 글쓰기는 어릴 때 붙이던 대자보 때문이었고, 책 읽기는 문화 대혁명 때 음서로만 읽던 책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관찰력이 좋았던 것 같다. 당시 대자보는 인민들이 인민들을 향한 소통 방식이었다. 지금은 웨이보가 그 역할을 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길 여기저기에 큼지막한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너무 많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진다고 사람들은 너무 많은 대자보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어느 날 대자보를 읽다가 거기에 어떤 남녀의 불륜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버젓이 적혀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고는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대자보의 재미를 알아버린 저자는 직접 대자보를 적기까지 한다.
어릴 때는 당의 혁명사상을 직접 적어서 대자보로 붙이기까지 하는 등의 활동을 한 것이다. 그러다 머리가 굵어지고 그런 활동에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기들 사이에 나돌던 음서들을 조금씩 보게 된다. 물론 그 음서란 것이 야한 소설은 아니다. 아니 어찌 보면 야하다고도 하겠다. 당시에 중국에 유통되는 책은 쑨원의 책과 마오쩌둥의 사상집 말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마담 보바리 등의 이야기는 약간의 불륜도 있으면서 고등학생인 아이들에게는 야한 소설만큼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만했을 거다. 당시 저자는 친구와 함께 해당 음서를 어찌하여 빌리게 된다. 하지만 해당 책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필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바른 글씨도 나중에는 괴발개발이 되기 일쑤. 결국에는 친구와 서로 번갈아가며 필사를 했는데, 서로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해 밤늦은 시간에 친구 집에 가서 글씨를 물어보는 일도 했다는 일화가 인상 깊었다.
저자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는 재미의 한 부분이었다. 나중에는 치과의사였던 저자가 문화원에서 매일 산책만 하는 작가들이 부러워 당에서 정해준 업무를 바꾸기 위해 잡지사에 투고한 내용은 흥미진진한 내용 중 하나였다. 당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정책으로 중국에 닫혀있던 문화요소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지금껏 들어오지 못했던 출간서적뿐만 아니라 잡지사도 하루에 몇 곳이나 생기곤 했다. 당시 책을 사기 위해서는 서점에서 나눠주는 표를 받아야 하는데, 그 표 받기가 무척 힘들어 아무리 일찍 나와도 한정된 수량이 끊겨 못 사고 돌아간 인원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때가 유일한 출간서적 시장의 황금기라고 했다.
잡지사도 순식간에 여러 곳이 생겨나면서 기고글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때 저자는 문화원의 작가가 부러워 여러 편 글을 써 두었는데, 그 시기에 많이 투고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베이징의 한 잡지사에 연락이 와서 한 달간 원고를 수정하러 베이징에 가게 된다. 당시 치과의사와 작가는 연봉이 비슷했고, 오히려 치과의사가 일반 막노동직과 마찬가지로 힘들기만 한 직업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직업은 결국 당에서 정해주는 건데, 운이 좋겠도 저자는 베이징에 갔던 일이 좋게 작용하여 치과의사에서 문화원 작가로 업을 바꾸게 된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중국이 우리와 다른 점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되었다. 특히 직업을 정해준다는 것과 갑작스러운 자본주의로 인해 문화가 폭발하던 시기는 나로서는 해보지 못한 경험이기에 신기하기만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신기한 단어를 꼽으라면 위 두 단어가 되겠다. 산채란 말은 사실 비 승인된 이라는 뜻으로 따지고 보면 모방과 같은 단어다. 지금은 아주 잘 나가는 샤오미 역시 처음에는 애플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했다. 아니 완전 따라한 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모방이 아니다. 바로 산채를 한 거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잘된 산채는 진짜를 앞지르곤 한다. 지금의 화웨이가 통신에서는 세계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어쩌면 중국은 지금까지 첨담기술들을 계속적으로 산채하면서 자기들이 진짜를 산채화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핀테크의 부분에서는 페이스북 등에서 중국의 성공을 배우려고까지 하는 것을 보면, 산채 문화는 어쩌면 지금의 중국이 있게 만든 뿌리가 아닐까 한다. 저자도 어느 날 지하철 역사에서 자기의 책과 동일하게 베껴진 책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따지지 않고 저자는 그냥 그 책을 구매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에서 산채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중국이라는 시작은 언제나 공급보다는 수요가 더 많은 시장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빈부의 격차마다 심각하니 동일한 제품이라도 수요가 있더라도 구매할 여력이 부족할 거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산채할 수밖에 없는 거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은 못 따라가니까, 아니 공급을 해도 구매할 여력이 안 되니까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다. 그것이 지금의 중국의 저력의 밑천이 아닐까 한다.
홀유는 산채와 또 다른 개념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얄밉지 않게 상대를 속이는 것. 어쩌면 내가 홀렸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사기를 쳐도 밉지 않게 치는 것을 홀유라고 한다. 사실 문화 대혁명의 실패는 이 홀유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땅 1만 평에 쌀이 1만 석 밖에 못 나온다고 하자. 그런데 사람들이 1만 평의 땅에서 10만 석의 쌀이 나온다고 홀유해서 보고를 하니까 국가에서는 대식당과 같은 어긋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쩌면 홀유 역시 너무 많은 인구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들만의 문화가 아닐까? 인구가 많다 보면 한 두 개 정도 살짝(?) 속여도 크게 티가 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조금씩 홀유를 하는 거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니까. 만약 누군가를 속였다고 해도 저 많은 인구 속으로 도망간다면 어떻게 잡을 건가 말이다.
홀유라는 말은 허세라는 말로 변환할 수도 있다. 저자가 쓴 글에 따르면 자기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골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매번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그 편지에서는 시골에 좋은 점들만 나열되어 있었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는 자식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왔는데, 직접 내려오고 보니 편지에 나열된 좋은 점들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저자의 어머니는 위화를 보고 ‘내가 너희 아버지에게 홀유 당했지 뭐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홀유가 어떤 느낌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중국의 현 시대상을 그나마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책은 중국 내륙에서는 발매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정부의 감시는 아직도 철저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글들은 여전히 중국 전역에서 읽히고 있다. 이를 봤을 때, 중국은 정말 철저하게 단속할 것과 안 할 것을 구분 짓는 것 같다. 어쩌면 그 큰 대륙을 하나의 당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확실한 기준점이 필요하긴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화라는 작가와 중국이라는 대륙을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