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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13. 2022

하늘

2022.08.12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무슨 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승기는 그 소리를 자기 앞에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은 기분이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 승기는 지금까지 노력한다면 나름의 방식대로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하늘은 승기를 돕기는커녕 짐만 되어 왔기 때문이다. 처음 승기가 하늘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건 7살 때였다. 당시 유치원 선생님이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했다. 승기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청소는 물론, 장난감 정리까지 솔선수범으로 앞장섰다. 그러나 언제나 선생님이 주는 상은 자신이 아니라 농띵을 부리는 철수라는 아이가 받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왜 자신이 언제나 선생님의 눈에 안 들어오는지 당시의 승기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의 하늘의 배신은 13살 때였다. 당시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어여쁜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승기는 이 여학생과 짝꿍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선생님께도 부탁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하고, 그 여학생에게 인사도 먼저 다가가 하고 했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승기는 그 여학생과 짝이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2학기 시작할 때쯤, 그 여학생은 전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진 아이와 사귀기까지 했다.

마지막 배신은 취업에서였다. 사람들이 모두 해야 한다고 하는 공부는 물론 대외활동까지 모두 하였지만, 승기는 언제나 그리고 번번이 서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류에 넣은 한 중소기업 마케팅 부서였다. 그 직장에서도 승기는 이름만 마케팅이지 잡무와 허드렛일만 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마케팅이라는 일은 입사 후 4년이 지난 뒤에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블로그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그냥 일기와도 같은 형태였다.

그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승기가 하늘을 믿지 않게 된 시점이. 이제는 승기는 노력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누가 승기에게 일을 부탁하더라도 진심을 닮지 않고 마감 시기까지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고 대략 1 ~ 2시간 만에 쭉쭉 작성하여 전달하곤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간단하게 보낸 자료를 며칠 동안 머리를 끙끙거리며 작성한 보고서보다 더 만족스러워했다. 그때가 상사한테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을 때다. 승기가 입사를 하고 5년쯤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는 지금 승기가 땅을 파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를 묻기 위해서다. 정말 이것도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승기가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흉기가 아니라 차 사고였다. 비가 많이 내렸고, 그날 따라 승기는 퇴근이 늦었다. 때마침 울린 전화기를 받다가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내려서 보았을 때, 사람 한 명이 승기의 차에 치여 쓰러져 있었다. 승기는 당연히 살아 있는지,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을 했지만 이미 숨은 쉬지 않는 듯했다. 재빨리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량 속 홀더에 꽂혀 있던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야? 전화가 어디 갔어. “

승기가 차량에서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뒤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에서 번쩍 하는 느낌이 났고, 눈을 떠보니까. 복면을 쓴 어떤 떡대 한 명이 자기 일행과 함께 승기의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다….. 당신들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사람을 묶어 놓고.”

“아이고 살인자께서 누굴 보고 협박한다고 말하는 거야?”

허스키한 목소리가 복면을 뚫고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많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승기는 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익숙한 목소리의 형태만 떠오르지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옆을 봐야지. 옆을. 자기가 살해한 인물은 직접 눈으로 봐야 할 거 아냐.”

사내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렸더니 한 여자가 묶여 있는 채로 피가 떡이 된 채로 누워 있었다. 얼굴은 무언가에 심하게 부딪혔는지 뭉개져 있었다.

“이… 이 사람이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야. 네가 방금 차로 치여서 죽여버린 사람이지.”

분명 승기가 처음 차에 치었을 때 확인하던 사람과 다른 인물이었다. 그때는 노인인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 옆에 누워 있는 인물은 젊은 여자였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

“지금 네게는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어. 경찰에 신고해서 자수를 하든,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그 여자를 파묻어서 완전 범죄를 꿈꾸든.”

“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아 참,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는데, 그 여자는 너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에 죽은 거야. 그 점 알아둬. 단순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특수 강간 폭행 살인이라는 점은 알고 있어라고. “

사내의 말은 승기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줄여주었다. 답정너로 승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미 선택은 정해져 있고, 승기에게는 선택권을 주어주는 듯한 액션만 치한 것이다.

“무… 묻겠습니다. “

“그래 잘 생각했어. 여자 바로 옆에 보면 삽이 있을 거야. 그걸로 저기에 땅을 파면 돼. 풀어줘.”

사내 뒤에 있던 다른 일행이 묶여 있던 승기의 손발을 풀어 주었다. 승기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 발을 주무르며 도망치기 위해서 몸을 던졌지만 곧 덩치가 큰 사내의 주먹에 맞아 곧바로 땅에 꽂혀버렸다.

“허튼 생각하다가는 다음에는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

사내는 많이 봐주었다는 듯이 말했다. 승기는 얼얼한 턱을 매만지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비를 맞으며 사내가 바라보는 가운데 땅을 팠다. 그리고는 하늘을 대고 욕을 했다. 지금껏 열심히 살았던 대가가 이거냐며 삿대질을 하고 싶었다.

“되었어 그만 파면되었고, 여자를 묻어.”

사내는 승기에게 여자를 묻기를 명령했고, 승기는 무력하게 여자를 안고 자기가 팠던 구멍에 여자를 뉘었다.

여자의 주머니에서 지갑이 떨어졌다. 아직 사내는 지갑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기는 흙을 덮는  행동하면서 떨어진 지갑을 재빨리 주워서 뒷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불룩했지만, 상의 와이셔츠가 길게 늘어트려져서 엉덩이  뒷주머니를 가리고 있고,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어 시야를 방해해서 걸리지는 않을 듯했다.

약 30분 정도를 묻었다. 마지막 흙을 덮을 때쯤, 또다시 눈이 번쩍거렸다. 승기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주위에 있는 건 찌그러진 자기 차뿐이었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지난밤이 꿈만 같았다.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찌그러진 차의 범퍼가 사고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뒷주머니를 뒤졌다. 역시나 지갑이 만져졌다.

승기는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여러 번 둘러보고는 차를 갓길에 대고, 지갑을 꺼내서 내용을 본다. 지갑 속에는 현금은 없었다. 몇몇의 카드와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사는 곳은 서울이었으며, 이름은 김현아였다. 나이는 자기와 동갑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눈에 익었다. 가르스름한 달걀형 얼굴에 일자 눈썹, 동그란 눈동자. 다무진 입. 그리고 이름.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13살 때 짝꿍이 되기를 기도했던 바로 그 여학생. 김현아였다. 소름이 돋았다. 아니길 바랐지만 불길한 기분은 어긋나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명의 남자. 당시 학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했던 아이 동민. 강동민이 떠오르면서 걸걸한 목소리가 어제의 그 사내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승기는 자기가 뭔가 굉장한 사건의 중앙에 들어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를 챘다. 도대체 하늘은 무슨 장난으로 자기를 이렇게 과거의 인연들과 엮기 시작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어졌다.

“저기요. 하늘 위에 계신 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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