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그래서 언제 올라간다고?”
엄마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어봤다.
“음… 한 내일 저녁쯤에 올라가려고.”
나도 엄마처럼 휴대폰에 고개를 떨구고는 대답했다. 그 이후로도 한 동안 이야기가 없었다. 오랜만에 여름휴가를 받고 내려온 고향이었지만, 예전과 같은 편안함은 없었다.
“그렇게 빨리? 조금 더 쉬었다가 가지.”
“올라가서 할 일이 있어. 이번에도 그냥 엄마 얼굴 보러 내려온 거야?”
“뭐 좀 먹을래?”
“아니, 요즘에 통 입맛이 없어서 안 먹어도 돼.”
의미 없는 대화가 엄마와 나 사이에 흐른다. 조금이라도 말을 붙이고 싶어 하는 엄마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철저하게 자기가 편한, 아무런 미련도 가질 수 없는 형태로 대답을 해버리는 나였다. 물론 엄마 역시 그런 나의 얌체 같은 마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알고는 있지만 서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하는 엄마의 마음이 반영된 거다. 나도 엄마도 서로의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절대로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게 어쩌면 엄마와 나 사이에 생겨버린 불문율 같은 거다.
엄마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눕는다. 나도 따로 말을 붙이거나 이야기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꺼내 귀에 꺼내고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자꾸만 엄마가 꿈직이는 소리나 가끔씩 하는 기침이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어온다. 누가 이 이어폰을 당대 최고의 노캔 성능을 가진 괴물이라 칭했던가. 유튜브를 찾아서 그렇게 말한 동영상에 욕을 박고는 폰을 꺼버린다.
“엄마, 그냥 딱 까놓고 말할게. 뭐가 그리 불만이야?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 이야기를 해줘야 알지 그렇게 눈으로만 말하고 아는 척 모르는 척 있으면 뭐하냐고. 내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거 모르겠어? “
엄마는 갑작스러운 나의 급발진에 깜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다.
“애야, 갑자기 왜 그러니? 불만은 무슨 불만“
“내가 자주 못 내려온 게 내 탓이야? 내 탓이냐고? 맨날 내려오면 용돈 달라, 아프다. 하면서 쉬는 게 아니라 기운 빠지게 만든 거 엄마 아니냐고? “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
“그랬어. 어제도 그랬고, 저번에 내려왔을 때도 그랬다고.”
나도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 갑작스러운 급발진이고, 깜빡이도 켜지 않은 들이박음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엄마는 평생 자기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아들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엄마의 말처럼 지금 살기가 너무나 빡빡하니까, 하소연할 때가 나 밖에 없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걸 모른다면 내가 정말 나이를 귓구멍으로 먹은 게 맞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급발진할 수밖에 없는 건. 내 마음도 지금 너무나 시꺼멓게 타버려서 더 이상 태울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서이다. 이렇게 입 밖에 내지 않으면 속애서 대형 화재가 나서 절대 회생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다. 그리고 그렇게 대형화재가 난 사람이 이미 내 앞에 있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나의 이런 급발진도, 엄마의 안면몰수에 아무런 답변 없이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더 화가 뻗쳐 그냥 집 밖을 뛰쳐 나오고야 말았다. 카톡이 온다. 오늘은 어느 날 보다 가장 밝은 달이 뜬다는 톡이었다. 하늘 위에는 정말 대낮의 태양보다도 밝은 달이 떠있었다. 가장 밝은 달이라고 하기에 카메라에 찍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소원을 빌어볼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 달라고. 폰을 들고 카메라를 켰는데, 이전에 셀카 모드로 설정한 다음 카메라를 꺼두었던지 휴대폰 속 카메라는 대낮같이 큰 달이 아닌 그 달에 비친 내 얼굴을 담아내고 있었다. 언제 울었는지 눈 밑은 물기로 너저분하고 정말 달덩이처럼 팅팅 부어버린 얼굴이 환한 달 빛을 받아 세상에서 가장 밝은 크기로 카메라에 잡혀 버렸다. 나는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촬영 버튼을 눌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