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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22. 2022

저녁

22.08.22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퇴근을 하고 밥을 안친다. 조용하던 집 안에 기계음이 조금 더해졌다. TV는 켜지 않는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밥이 되는 동안 샤워를 하고, 찬장에 있는 원두를 간다.  


곱게 갈린 원두를 더치커피를 만드는 통 안에 넣고 물을 채운 뒤, 냉장고 속에 넣어둔다. 그리고 다시 원두 20g을 핸드 그라인더에 넣고 갈기 시작한다. 사그락 사그락 하는 소리가 퍼지기 시작한다.  


픽 –  


원두를 채 다 갈기 전에 밥이 다 되었다.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고, 밥을 푼다. 갈다가 남은 원두는 옆에 두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다. 너무 조용하다. 약간의 소음이 필요했고, 결국 TV를 틀어 뉴스가 나오는 채널로 돌린다.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 하루였다. 오늘도 어떤 모녀가 자살을 선택했다. 밥을 뜨던 숟가락을 넣고 한동안 그 뉴스를 듣는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고, 내 주변의 일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과연 그 옆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침에 출근하면서 동네 마트를 오고 가며 봤을 것이다. 요즘에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지는 어림짐작하지 않을까. 혹은 뉴스에 나온 집이 옆집인지 알 것이며, 경찰과 119가 들어왔을 때도 옆집에 저런 사건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집주인은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몇 달 동안 월세가 들어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기도 했을 것이며, 직접 찾아 가보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뉴스를 보는 지금의 나는 어떤 심정일까. 그냥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할까? 내가 아니라고 안심을 할까? 어쩌면 조금씩 다가오는 암울한 미래에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할까.  


누구를 탓할 수도, 스스로 비관할 수도 없는 감정이 폭풍처럼 올라온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기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냈던 나에게 보상을 주어야 했기에. 다 말라비틀어진 김치를 흰쌀밥 위에 얹어 입안에 집어넣는다.  


식사가 끝난 후, 오늘 하루 제2차전을 위해 갈다가 만 원두를 마저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잔업이라는 제2차전을.. 오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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