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07 한가람 미술관 -자코메티 전
조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고 생각했다. 조각만이 아니다. 그림, 음악, 글 등 쉽다고 느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도 무슨 의도인지 몰라 그냥 지나가기 일쑤였고, 로댕의 조각도 엄청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자코메티 전시 역시 처음에는 '가지 말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전시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앙상하기 그지없는 막대기를 두고 조각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흔히 현대 예술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어떤 이에게는 그냥 변기 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굉장한 의미를 내포한 설치 미술이 되기도 한다. 자코메티 역시 그런 거라 여겼다. 전시를 보더라도 작품의 이해보다는 현대 예술과 현재의 나와의 간극만을 느끼고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자코메티는 스위스의 국민적인 조각가이다. 스위스 100프랑 지폐를 보면 나오는 인물이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그는 화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자코메티는 학교에서도 전용 작업공간을 만들어 줄 만큼 뛰어났다.
알베르토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알베르토가 어느 날 혼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들린 책방에서 로댕의 작품집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있는 돈은 집으로 돌아갈 차비 밖에 없었다. 알베르토는 그 순간 망설임도 없이 로댕의 작품집을 구매한다. 그리고는 눈이 오는 몇 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했던 말이 "이제 책을 볼 수 있겠다." 였다. 그만큼 알베르토의 작품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은 알베르토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릴 적 사고로 성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거기다 우연히 관계 중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게 된 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그때 이후,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어머니에 대한 심각할 정도의 의존 성향을 지니게 된다. 그가 화가가 아닌 조각가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코메티를 말할 때 대부분 알베르토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 모두 뛰어난 예술가이고 공예가이며 건축가다. 둘째인 디에고 자코메티는 자신도 뛰어난 공예가였지만 형의 재능을 위해 알베르토가 죽는 날까지 형을 위해 헌신한다. 알베르토의 작품이 현재 초고가의 가격이 매겨지는 이유도 동생 디에고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 집안인 만큼 그의 작품에는 가족들에 대한 작품도 많다. 하지만 형제와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자코메티 성을 가진 모델의 작품은 아내인 아네트와 조카인 실비오 밖에 없다. 그의 형제는 디에고를 제외하고라도 2명이 더 있다. 여동생인 오틸리아와 막내 브루노다. 하지만 자코메티 가족에게 후손은 오직 여동생 오틸리아의 아들인 실비아 밖에 없다. 알베르토는 앞서 말했다시피 성기능을 상실했고, 디에고는 너무 늦게 결혼을 해 자식을 낳지 않기로 했다. 더군다나 유일한 여동생마저 조카인 실비오를 42시간의 산고 끝에 낳은 뒤. 5시간 만에 운명해 버린 거다. 그녀의 죽음은 알베르토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오틸리아 외에도 알베르토에게 죽음의 의미를 전해 준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반 뫼르소다. 백만장자인 그는 노후에 기차 여행을 하다가 알베르토를 만나게 된다. 아직 어리지만 그의 지식에 어떤 끌림을 느낀 뫼르소는 신문에 기차에서 만난 아이를 찾는 광고를 낸다. 그렇게 알베르토와 반 뫼르소는 다시 만난다. 뫼르소는 알베르토에게 모든 경비를 자신이 되어 줄 테니 한 동안 같이 여행을 하자고 한다. 알베르토는 승낙을 하고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고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반 뫼르소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반 뫼르소는 그렇게 알베르토와 떠난 여행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어른 나이에 죽음을 본 알베르토는 아마 한 평생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또 잠을 자기 전, 자기 신발이 원하는 각도가 아니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신발의 각도를 맞추다 잠을 한 숨도 못 잔 적도 있다. 그의 이런 결벽증 같은 방어기제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바라본 영향이 아닐까.
어떤 조각을 보더라도 그의 작품은 당연 눈에 띈다. 독특한 구성 앙상한 몸. 그의 이런 작품 형식은 그가 45세가 다되어서야 완성하게 된다. 처음 그는 아버지에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라고 배운다. 그렇게 그는 눈에 멀리 있는 사람은 얼굴은커녕 손이 있는지 다리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화풍에 옮긴다.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떤 막대기 같은 것만 보일 뿐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말할 때, 사람들은 실존주의를 말한다.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고 가며 사르트르와 피카소 등 다양한 사상가와 예술가를 만나며 그는 작품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전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으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그 순간의 고단함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만들어낸 그의 작품 양식은 힘든 삶에서도 묵묵히 걸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게 된다. 처절하지만 묵묵히 자기를 깎아내면서 걸어가는 모습. 어쩌면 알베르토는 우리 인간에서 공통된 그 앙상함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자코메티라는 인물을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1시간 남짓 시간 동안 그의 사상과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진품들이 찾아온 작품이었다. 내 눈 앞에 몇 십억 하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정말 영광스러운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