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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한 May 26. 2021

마을버스, 마음을 나눈 당신께

#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행복할 거야

출처 : https://pixabay.com/


 별것 아닌데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 없는 형편에 전세를 구하다 보니 마을 꼭대기쯤 위치한 곳에 살게 되었다. 그곳은 좁고 매우 가팔라서 작은 마을버스만 다녔고, 겨울에 눈이 오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그러나 약 5년간 매일같이 버스를 타며 고마운 인연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아침마다 살갑게 인사해 주시던 기사님, 만원 버스에 탈 수 있게 자리를 내주었던 교복 입은 학생들….


 그중에서도 한 이름 모를 할머니와의 추억이 아직까지도 내 가슴을 따스하게 덥히고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내게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흔쾌히 스마트폰 앱을 실행하여 버스 위치를 알려드렸고, 할머니는 내게 “고마워 학생, 참 예쁘다.”라고 답하셨다. 나는 쑥스럽기도 하고 그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고와 “할머니도 고우세요.”라고 답했다.

 

 무뚝뚝한 내 성정을 잘 아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았다면 기함할 일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렇게 그렇게 생각했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전혀 낯간지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때마침 버스가 왔고 우리는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고 종점에서 함께 내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목례를 하고 떠나는 나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학생이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행복할 거야. 다 늙은 할머니가 뭐가 예쁘다고…. 학생도 행복한 하루 보내.”


 짧은 삶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이토록 순수하고 묵직한 감사 인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건넨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다니, 간지럽고 이상한 일이었다. 머니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반짝반짝 빛났을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살아온 인생의 깊이처럼 진한 감사인사로 결국 내 하루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할머니의 말에 감사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더 살갑고 친절해졌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왔고, 그러고 나면 나 역시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 급격히 늘어난 주름에 속상해하는 엄마에게 아직도 예쁘다고, 아직 한창때라고 말하는 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경계할 일이 많은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며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세웠던 가시를 말로써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막연히 생각하던 '진짜 어른'은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여전히 고운 모습으로 또 다른 이에게 따스함을 나누어주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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