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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재 Sep 27. 2022

[문이과 예체능 통합형 둔재] 20대까지의 기록

어떻게 나는 체육 전공자가 되었는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도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환경에 강제 노출되어 있었다. 바쁜 부모님과 생활하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의논하는 시간보다 몇 배는 더 되었다. 이제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내 최대 관심사는 프리미어 리그에 있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영국에 진출하던 시기에 혈기왕성한 중학생이었던 나는 주말 새벽이면 항상 티비 앞에 앉아 그 공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제리 맥과이어 속 톰 크루즈

궁금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스포츠에 선수로 참여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제리 맥과이어 속 톰 크루즈가 분한 제리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나는 제리를 통해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 날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리서치를 시작했다.


리서치 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스포츠 에이전시 시장은 우리 나라에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스포츠 에이전트는 업무 특성 상 계약을 대리해야 하는 일이 많기에 법학 지식, 경영학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 또한 산업군 특성 상 스포츠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 내가 당시 지금 수준의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경영학과 혹은 법학과를 목표로 했을테지만, 스포츠에 심취해있던 나의 미숙한 판단 수준은 체육 전공을 마음에 품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너는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목표가 확고해 믿음이 간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앞서 세운 목표는 건재(?)했고, 그로 인해 나는 일종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일방향적으로 쏟아지던 진로 관련 문의에 나는 미리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전략과 타임라인을 내밀었고, 그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얻어진 달콤한 자유가 좋아, 더 안일하게 사고하며 나를 속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당연히 체육을 전공하고, 졸업 후 스포츠 산업계에 몸 담게 될거야." 라는 완성된 문장으로 나를 속이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며 입시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충무로에 위치한 D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 진학 후에도 생각의 변화가 크게 찾아오지 않았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인연들과의 시간을 즐겼고, 진지한 고민들은 제쳐두었다. 그럼에도 마음 속에서 무언가 불편함이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은 지속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 고민을 꺼내어 마주하기를 회피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학교 2학년 무렵이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주위 동기들이 으레 그러했듯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군입대를 통한 터닝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군대에서의 성장이든, 군대를 통한 성장이든.


그렇게 2학년이 되어 이제 본격적으로 학과 생활 보다 바깥 생활을 신경쓸 수 있게 된 나는 과거부터 목표로 설정해둔 "스포츠 산업"과 관련한 공부, 학회 활동 등을 시작했다. 당시, 스포츠 마케팅 관련 유명 카페에 매일 같이 들락날락하며 어떤 학습을 해야 할지, 어떤 자격증을 따야할지 등을 찾아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리고 당시 평소 지니고 다니지도 않던 메모장을 구매해 체크 리스트를 적어두고, 매일 꺼내어 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릴 때 부터 열망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두근거림이나 설렘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관련 생각을 할 때면 첩첩산중이라는 단어만 머릿 속을 가득 메웠다. 학회원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한 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뭐 때문에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는거지?", "나는 이 사람들만큼 이 일과 산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걸까? 아니 앞으로 대할 수나 있을까?" 모든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학회 활동을 중단하고 관련 학습을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터닝 포인트로 두고 싶었던 군입대를 카투사라는 옵션으로 갈 수 있게 되어, 군입대를 결정했다. 그렇게 소득 없는 2학년 생활을 마치고 나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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