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국여성 1,328명에게 '임신중단약'을 보냈다.
*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이란?
우리는 흔히 ‘임신중절‘(abortion)이라고 하면 외과적 수술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 밖으로 눈을 넓혀보면 선택지는 넓어진다. 전 세계 67개 국가에서 ‘유산 유도 약’(abortion pill)이 공식 승인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산 유도 약은(미페프리스톤 성분과 미소프로스톨 성분으로 이루어진 약)은 WHO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받아 2005년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됐다.
현재 한국에는 미소프로스톨만 들어와 있을 뿐 미페프리스톤은 도입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미소프로스톨 단독 사용 시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좀더 권장되는 방법인 두 가지 성분을 함께 복용하기 위하여 미페프리스톤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약물 유산의 성공률에 대해 ”(임신) 8주 이내의 경우 98~100%, 8~9주 사이에는 96~100%, 9~10주 사이에는 93%~100%에 달한다”며 ”지난 16년간 미국의 미페프리스톤 관련 합병증 발생비율은 0.05%, 사망률은 10만명당 0.6건이었다. 같은 기간 출산 관련 모성 사망률은 10만명 당 9건”이라고 전한다.
윤정원 전문의는 ”(약물 유산에 대한) 외국의 논의들은 오랜 역사를 가져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여 지금 바로 규제 없이 도입하라고 하는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적어도 △건강보험의 적용 문제 △식약처의 관리 △주 수 제한 △병원에서의 의사 처방 등의 방식으로 도입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안전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 선택지를 늘이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올해 안에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이자 재생산권 활동가인 레베카 곰퍼츠 박사(Rebecca Gomperts, 51)가 한국을 방문했다.
곰퍼츠 박사는 인공임신중절이 불법인 나라에 ‘임신 중지 선박’(abortion ship)을 끌고 가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배에 실어 공해(公海)에서 유산 유도약을 처방해온 네덜란드 비영리단체 ‘Women on Waves’의 설립자다. 2001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폴란드(2003년), 포루투갈(2004년), 스페인(2008년), 모로코(2012년), 과테말라와 멕시코(2017년)을 방문했다.
드론과 로봇에 임신중단약을 실어 임신중지가 불법인 폴란드(2015년), 아일랜드(2016년) , 북아일랜드(2017년)에 사는 여성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온라인사이트 ‘Women on Web’을 통해 유산유도약을 원하는 전 세계 여성들에게 상담 후 약을 배송하기도 한다.
이번에 곰퍼츠 박사를 초대한 곳은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 행동’. 공동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이상윤 연구위원은 곰퍼츠 박사에 대해 ”직접 행동주의를 선호하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많이 취해왔다. 만약 한국에서 드론이나 로봇으로 유산 유도 약을 보내준다면 불법이 될 것”이라며 ”그런데 인권적 측면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곰퍼츠 박사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던 분”이라고 설명한다.
아래는 5일 기자간담회, 추가 인터뷰를 통해 곰퍼츠 박사와 기자들이 나눈 대화다 참고로, ‘Women on Web’을 통해 유산유도약을 제공받은 한국 여성은 1328명(2016년 1월부터 2017년 10월 16일까지)이며 이들이 왜 약을 요청했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는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998년부터 20년간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위해 활동해 왔다. 이 활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 나는 의사이고, 여성이다. 예전에 남아프리카에서 인턴십을 했었는데, 그때 임신중지 불법화로 인한 부정적 효과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로서, 이 문제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 Women on Web에서는 여성의 몸 상태를 체크한 뒤 유산 유도약을 보내주고 있나?
= 물론이다. Women on Web에는 5명의 의사가 있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와 동일하게 의료적 조언을 제공한다. 우리가 2005년 Women on Web을 시작할 때 그런 질문이 정말 많았다. 위험하지 않냐고. 하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해, 유산유도약이 위험하지 않으며 부작용 사례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입증됐다. 작년에 WHO가 Women on Web의 원격의료서비스를 안전하다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 왜 임신중지가 합법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 임신중지는 나에게 있어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문제다. 임신중지 불법화가 여성들에게 미치는 해악이 강력하다. 자가낙태는 위험하며, 여전히 임신중지에 대한 부정적 낙인/수치심 주기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임신중지는 여성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이지 않나. 네덜란드에서는 여성 4명 중 1명이 평생 1회 이상의 임신중지를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다.
-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임신중지 선택권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선택권 지지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 반대 진영에 너무 반응하기보다는, 우리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반격은 우리가 효과적으로 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자 하는 반대 진영에 휘말리기보다는 인권, 자율성, 존엄을 향한 우리의 싸움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여성이 직접 낙태를 경험했거나, 이를 경험한 지인을 둔 사람들이 많다. 임신중지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 ‘태아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휴. 종교적인 신념이자 믿음일 뿐 과학적인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다고 해서, 그걸 다른 이에게도 강요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신념이나 믿음과 상관없이)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 임신 중지를 고민하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사실 고민하는 여성 보다 이미 (임신을 중지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여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고민하고 있다면, 주변에라도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Women on Web이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이메일을 통한 상담이 가능하다. 우리의 헬프 데스크에는 한국인도 2명 일하고 있어, 한국어 상담이 가능하다.
- 멀리서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접하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도 궁금하다.
= 2년 전 한국의 ‘검은 시위’에 대해 알게 됐다. (큰 웃음) 매우.. 매우 흥미로웠다. 매우 필요한 일이고, 강력하다. 크게 감명받았고.. 나를 한국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Women on Waves의 활동을 다룬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을 보면, 임신 중지 선박을 이끌고 찾아간 나라에서반대 시위대가 찾아와 당신들에게 소리 지르고 위협하기도 한다. 솔직히 두려울 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 아니다. 두려운 적은 없었다. 예를 들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사실 그들의 반응을 모두 받아들이기보다는, 좀 신경을 끄려고 한다. 그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태도는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보통 그럴 때는 언론에서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기 때문에, 비록 소란스럽지만 통제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 임신 중지 선박 캠페인과 연계한 해당 지역의 활동가나 유산 유도약 처방받은 여성 중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나.
= 없다. (유산유도약을 처방받은) 폴란드 여성들이 우리의 배에서 내릴 때 지역 경찰들이 심문하려고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배는 네덜란드 소속이었기 때문에 배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지역 경찰이 개입할 권한이 없었다.
- 왕성한 활동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 어려운 질문이다. 흠.. (잠깐 생각)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가 없어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전 세계적으로 절박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정말 많다. 그러한 여성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 그게 나와 Women on Web의 가장 큰 동력이다. 여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작년에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갔었다. 비록 과테말라가 (자신의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내쫓았지만.. 배로 하는 활동에 대한 저항이 워낙 강력해서, 한 몇년 후에 다시 할 생각이다. 우리는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들을 찾아가, 합법인 국가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그 나라에서 논쟁과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우리는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무료인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권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 : 곽상아 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