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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Nov 18. 2023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교회

[상가교회 분투기 1] 내 주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교회

  [상가교회 분투기 1] 내 주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교회 

    

  상가교회 부임이 결정되었지만, 사실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간 담임목사 부재로 인해 장기간 멈춰 있었던 주중 예배 및 양육훈련을 다시 세워야 하고, 주보며 유튜브, 홈페이지 등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상가교회에 맞는 방송시스템도 구축하고, 공간이 넓지 않기에 인테리어도 꼭 필요한 영역에 있어서는 손봐야한다.    

  그뿐인가? 교회 규모가 작더라도 해야 할 것은 많다. 심방, 양육훈련(제자훈련), 성경공부, 독서모임, 찬양팀 운영, 영상편집 등등. 해야 할 것은 당연히 하되, 교회가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더욱이 이 모든 걸 나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역량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처참한 수준이다. 그래서 동역자가 필요하고, 연합이 요구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역에 치이지 않고, 내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서야 한다.      

  각설하고, 이러한 사역 고민보다, 한 가지 마음을 흔드는 소망이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부임하기 전이며, 또 현 교회 사임하기 전이므로) 지금 교회에서의 일이다. 한 번은 암 투병 중인 집사님을 심방한 적이 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그저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이라는 녀석은 얼마나 이분의 삶을 고통과 번민으로 휘저어 놨을까? 감히 그 감정을 헤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분위기가 처질 무렵,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췄다.      


  “목사님, 평생 제 소원이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것이에요.”       


  집사님의 진심을 듣는 순간,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집사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꼭 같이 걸어요! 그러니 건강하셔야 됩니다.”     


  야고보가 순교 전 마지막으로 순례했다는 길, 어디선가 듣기론 800km가 넘는 길에서 두 명 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길, 바로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목회철학 중 하나는 성도를 목회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영혼의 회심이 아닌 목표 지향적 사역 성과를 위해 성도들에게 ‘순종’과 ‘헌신’이라는 프레임으로 가스라이팅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반대한다. 내 안에 그러한 삿된 정욕이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이룬 이들과 함께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감사, 행복 이러한 복된 가치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소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부임하는 ‘바꾸는교회(Church that God shapes.)’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목표 지향적 사역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다 진짜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일상을 놓치고 ‘번 아웃’ 되는 것이 아닌, 율법과 공동체 문화를 들이대며 정죄하고 지적하고 텃세 부리는 것이 아닌, 지친 영혼들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교회, 가슴 아픈 자들의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애통과 절규가 사무치는 곳에서 따뜻이 손잡아주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      


  언젠가 나 역시 성도들과 함께 순례길을 걸을 소망을 품고 있다. 가서 마음껏 예수님을 묵상하고, 삶의 주파수를 하늘에 맞추며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맹목적 순종과 헌신, 일꾼, 봉사 등의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담지우며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 아닌 같이 순례길 걷자고, 같이 기독교 유적지에 가서 묵상하고 오자고, 같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고 오자고, 그렇게 말하려 한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신 것처럼, 나 역시 성도들 옆에 함께 있어 주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부임하는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가 사역에만 매진할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시간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진심으로 마음 쏟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 하는 한 영혼임을 알며, 그 영혼을 주의 마음으로 안온하게 품어주는 하늘 공동체였으면 한다. 그러니 산티아고 순례도 기도하련다. 언젠가 암 환자 성도와, 삶의 푯대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과, 인생의 궤도 수정과 함께 새로운 비전의 길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조금 오랜 시간 그 길을 걸어도 좋겠다. 


  하늘의 뜻을 묵상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순례길 여정, 이런 교회, 내 주변에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작은교회 #상가교회 #개척교회 #청년교회 #강동구교회 #가나안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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