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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Sep 01. 2020

“환대가 필요해”, 당신의 공동체에 누군가 방문했습니다

[낭만 그리스도인 #7]

  [낭만 그리스도인 #7] “환대가 필요해”, 당신의 공동체에 누군가 방문했습니다.


  교회 청년부 예배와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헛헛하다. 다음 주에 다시 올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교회란 무엇인가’가 내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젖은 추위가 몸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12월의 늦은 밤,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형석은 지친 마음으로 대학 시절 함께 신앙생활했던 지선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 교회 분위기 어때? 다음 주에 너네 교회 한 번 가볼까?’




  형석은 공무원으로 방향을 틀지 않는 이상 지방에서는 답이 없다 생각했다. 때문에 졸업 요건을 다 채운 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교회 공동체가 주는 안온함과 자신이 몸담았던 교회 대학부 시절의 은혜를 기대하며 인터넷 정보를 근거로 홀로 집 근처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교회 청년부 모임을 찾았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복작복작한 예배당 곳곳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만의 수다를 떨고 있었고, 간혹 힐끗 쳐다보는 눈빛들은 있었지만 형석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이는 없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청년부 예배였는데 아무도 인사하는 이가 없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전 교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하게 서운하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처음 온 사람 부담 갖지 말라는 걸까.’ 


  데면데면해진 형석은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도부터 드렸다. 예배 시작 10분 전에 와서 5분은 기도를 또 5분은 그렇게 멀뚱히 있었던 것 같다. 이윽고 한 청년이 다가와 새가족이냐며 물어왔다. 어색함을 달래주는 내심 반가운 질문이었다. 형석은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그렇다”라고 대답한 뒤 다음에 이어질 환영의 인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작은 기대는 무너졌다. 누군가 그녀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고, 자신에게 처음 말을 건넨 그 청년은 새가족 작성지 한 장을 내밀더니 작성을 부탁하며 이내 근처에 모여 있던 다른 무리에 섞여 회의인지 수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낯설었던 적이 있었던가. 고립된 외로움에 형석은 짧은 시간 급격하게 무력해져 갔다. 그는 홀로 남겨진 무안함을 겨우 진정시키고 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로 이어지는 예배의 형식은 전형적이었으나 그 내용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그에게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함에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는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예배 후에는 소그룹 모임이 있었는데 형석은 그제야 등장한 새가족 리더로부터 간단한 인사와 함께 새가족 교육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새가족 교육은 1:1로 진행되었다. 그리 특별할 건 없었다. 리더는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 뒤 자신이 맡고 있는 파트의 교육을 능숙하게 진행했다.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형석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나름대로의 존중의 태도였다. 새가족 교육을 마친 뒤 별다른 모임이 이어지진 않았다. 리더는 새가족 리더들 모임이 있다는 이유로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주변을 보니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리를 지어 근처 식당이나 카페로 향하는 듯했다.      


  형석은 이날, 실로 오랜만에 주일 저녁에 혼자이게 되었다. 연말에 접어드는 달뜬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형석의 주변은 정적만이 흘렀다. 지역 교회에 있을 때 공동체 전체가 서로를 살뜰하게 살피던 배려가 새삼 소중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치킨 한 마리를 배달 주문하고서는 다이소에서 급하게 구입한 5천원짜리 칼국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듣는 가을방학의 <근황>이 묘한 위로가 된다.     



@Photo by Phil Coffman on Unsplash

  ‘그 교회 분위기 어때? 다음 주에 너네 교회 한 번 가볼까?’     


  즉흥적으로 카톡을 보낼 만큼 지선은 대학 생활 내내 격의 없이 지낸 친구다. 활달한 성격이기에 몹시 편하면서도 또 누구보다 남들 챙겨주는 데에는 성정 고운 이였다. 몇 분 뒤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물론이지! 다음 주에 당장 와! 아니다, 주중에 우리 소그룹 모임 하기로 했거든? 멤버 중에 생일이 있어서. 너도 올래? 다들 환영할 거야.’    


  형석은 지선의 답장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 조금 멀더라도 지선이가 있는 교회로 갈까, 아니면 집 근처 교회에 한 번 더 나가볼까. 어쩐지 주변인이 된 것만 같은 상황에 형석은 생각보다 더딘 적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관심과 방임이 부담 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인 걸까? 뭔가 해석되지 않은 채로 하루를 정리해야 했다.      




  오늘, 당신의 교회에 당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낯선 이가 찾아온다. 그런데 한 번씩 시선을 주면서도 좀처럼 다가가지는 않는다. 이건 응당 새가족 리더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만 생각한다. 나는 공동체 리더지만 어쩐지 나서서 인사하기도 좀 그렇다. 그러니 낯선 이는 되레 교회의 낯섦에 짐짓 당황한다. 그가 넌(non) 크리스천인데 용기 내서 교회 문턱을 넘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 공간에, 그 분위기에 홀로 남겨진 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돈스러운 감정을 겪는다.      


  환한 미소로 다가가 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린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고백하며 그 구원의 기쁨을 찬양하는 교회다. 주 안에 하나 된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주님의 몸 된 공동체라 고백하는 교회다. 당신 역시도 누군가의 배려와 환대로 지금의 공동체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나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하며 조건적으로 다가가지 않으셨다. 그저 사랑함으로 손을 내밀었다.      


  해마다 수많은 새가족들이 교회 공동체를 방문한다. 하지만 정착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리더들도 나름 항변한다. “어느 공동체가 더 괜찮은지 교회 쇼핑하는 것 같아서요.”, “뭔가 낯설고, 부담스러워요.” 일견 이해가 된다. 그래도,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너를 불편하게 하는 일을 모두 없애줄 테니, 편하게 사역하라”는 말씀 대신 “내가 사랑하는 그 한 영혼을 너 또한 사랑하라”며 조용히 십자가를 건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실은 그 언젠가 낯선 나를 환대하며 다가온 이에게 주셨던 동일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당신의 교회 공동체에 환대가 넘쳐나길 바란다. 다른 곳에 있다가 일신상의 이유로 교회를 옮기게 된 새가족이, 예전에 함께했다가 공동체에 다시 오랜만에 나온 지체가,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을 와 본 청년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것은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아니다. 나를 향한 환대의 마음이다. 선입견 없는 친밀함의 반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차별이 없으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대하고, 사랑함에 조건을 두지 않으셨다. 그저 존재 자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하게 보셨다.      


  당신의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평강과 은총으로 안녕하기를 바란다. 건강한 교회의 첫걸음은, 누군가 예수님을 만나는 첫 계기는 다름 아닌 믿는 자들의 기꺼운 환대에 있다. 그래서 내게는 새가족을 맞이하고, 돌보는 리더들이 정말 귀하게 여겨진다.      




p.s – 형석은 그 교회에 그런대로 잘 적응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신앙의 기본 훈련이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현 교회 청년부 예배에 은혜가 있었으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조금 더 다니고자 했던 것이 결국 그 부서에서 리더를 섬기는 과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공동체에서 연상의 자매를 만나 동역자들의 축하 속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다. 


*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름과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수정했습니다. 


#교회 #기독교 #크리스천청년 #환대 #청년부 #청년예배 #기독공동체 #기독청년 #청년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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