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복음의 길을 따라가는
[두서 없음 주의] 작은 개척교회가 세계일주를 꿈꾸는 이유...근데 복음의 길을 따라가는
“목회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목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이 그의 삶에 닿을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일이 목양이 아닐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목사라고 설교 한 번으로, 기도 한 번으로, 치열한 생의 분투함 없이 성경의 잔 지식을 가진 조언 한 번으로 누군가의 삶을 관통하는 해답을 쥐여 줄 수 있을까? 그저 울고 웃는 시간의 결을 함께 지나가며 “예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복음의 체온을 나누는 일이 목회임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청년의 때 112개국을 풍찬노숙하며 다니고, 부목사 때는 성도들 데리고 복음의 흔적이 서려 있는 제3세계 곳곳을 다닌 깜냥이 어딜 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리교회는 개척교회라고 위축되지 않고, 매년 의미있는 비전트립을 간다. 관광지를 중심으로 지도에 선명히 그려진 길을 따라가지 않고,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 속으로 떠나는 여정이다. 1세기도 더 넘은 그 옛날, 선교사들은 “목포”에 들어와서 어떤 소망을 가지고, 어떤 일들을 했던 걸까? “제주”의 복음의 서막은 대관절 어떻게 열리게 된 것일까? ‘4.3 사건’의 아픔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신안”의 12사도 교회를 가기 전, 석 달 동안 열 두 제자를 말씀으로 먼저 알아가 보자. “일본” 소도시에서 현지인들을 목회하는 한인 선교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들은 무엇일까. 지난 3년 간 질문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걸어온 여정이다.
비전트립을 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예수의 꿈을 꾸는 아침과 이런저런 치이는 일들로 마음이 약해지는 밤들이 뒤섞이고, 그 틈에서 하나님의 현현은 언제나 말씀 되심의 “안아주심”과 “위로하심”이었다. 그리고 비전트립을 갈 때마다 주님이 무명자들의 삶에 남긴, 시대의 시간 속에 남긴 흔적들을 마주하고선, 내가 걷는 오늘의 길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땅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자라게 하시는 분이셨다. 그 섭리가 깨우쳐질때마다 여행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인 것이다.
바꾸는교회 다음 여정은 어디일까? 아프리카… 대지의 광활함과 원색의 컬러, 그리고 본유적 감각의 생동감으로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아프리카를 꿈꾼다(신비의 감격이 일렁이는 아프리카의 하늘을 담은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한다.). 작은 교회라고, 꿈조차 작진 않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만나고, 하나님나라에서 주어진 삶의 의미를 계속 묵상하게 할만한 곳이라면 철저하게 준비해서 어디든 갈 생각이다. 가서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또 연합하여 도울 것이다. 풍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복음의 빛이 꺼지지 않는 곳에 가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명을 점검할 것이다. 이렇게 아주 작은 소망을 노래할 수 있는, 숨쉬는 오늘의 시간과 자리의 모든 것들이 감사해서 쓴 글.
덧대어 광야로 직접 가야만, 우주에서 명멸하는 별들을 압도된 감흥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