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먼 사랑

[7년 세계일주 #4]

by 시크seek
말리 내전 중에 만난 할아버지와 손녀('2012)


말리는 내전 중이다.

이미 수천 명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아프리카 여행자들의 미지의 파라다이스 팀북투는 반군이 점령해 들어갈 수가 없다.

인류가 지켜야 할 세계문화유산도 파괴되었다.


수도 바마코는 무관심한 듯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내전의 시발점이 되었던 쿠데타는 이곳에서 발생했다.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 발발은 밤의 평화를 깨뜨리고,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민초들의 삶이란 정치보다 당장의 삶이 우선인 법.

생사를 가늠하는 치안부재 속에서도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고단함이 농밀한 날숨이 된다.

내전 중에도 누군가는 보살핌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또 보살펴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다.


말리까지 와서 사랑의 당위성을 삶으로 보여주는 이들과 함께 방문한 빈민촌.

모기가 워낙 많아 말라리아 예방이 필수다.

모기장을 보급하고, 수용성 비타민을 건네며, 매주 두 차례씩 집과 마을 구석구석 방역도 한다.

아프리카는 모든 난제에 있어 사후약방문이 아닌 예방이 요구된다.

그들에겐 절실히 요구되는 안전의 최소 필요조건이다.


날이 덥다. 반팔을 입은 까닭에 팔이 벌겋게 익는다.

우물을 긷는 여인이 나를 보더니 뭐가 쑥스러운지 웃기만 한다.

아이들은 새로운 이방인의 방문을 반긴다. 어떤 녀석은 카메라를 더 반긴다.

아직은 세상을 그저 자기네들 놀이터로 생각하는 귀여운 녀석들.


한 집에 들어섰다. 그늘에서 할아버지가 손녀를 안고 있다.

어눌한 불어로 사진 찍겠다고 양해를 구할 때, 할아버지는 그러라며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뷰파인더에 들어온 할아버지는 딴 곳만 응시한다.

"이쪽 보세요, 할아버지." 생긋 웃으며 얘기한다.

할아버지가 이내 시선을 맞춘다.


사진 찍는 동안 할아버지는 손녀를 놓지 않고 계속, 꼬옥 안고 있다.

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동네 아이들이 한 마디씩 떠들어 댄다.


"할아버지는 장님이에요."


아니야, 내가 말을 걸었을 때 그는 분명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어. 확실해.

장님이라니. 보이지 않는다니.

아니,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았다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손녀를 꼬옥 안고 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면서도 불평을 일삼는, 불만으로 감정을 소모시키는,

욕심에 눈이 먼 내 앞에 사랑에 눈이 먼 한 인생이 조용히 앉아있다.


"할아버지, 나 갈게요. 바이바이~."


할아버지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잘 가라며 웃는다.

이번엔 초점이 다르다.

내가 두어 발짝 뗄 때까지도 그는 허공에 대고 계속 미소를 짓는다.

괜히 울컥한다.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들은 "이 집은 우리가 지킬 테니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그들을 단지 긍휼함으로 바라보기 전에

어디에서건 존재를 차별 없이 환대함에 있어

나의 정서는 빈곤하지는 않았었는지 되묻게 되는 짧은 에피소드.


......


+ 말리를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오래 기억에 남았던,

내 영혼이 환절기였던 2012년 말리에서의 이야기.

말리는 2020년인 지금도 여전히 군사 반란 등으로 인해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말리의 시골 동네에서 만난 모습들. 오른쪽은 내전을 피해 말리 북부에서 피난 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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