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캐럴송 그리고 한 여름밤의 꿈

[7년 세계일주 #5]

by 시크seek

자전거 세계일주 - 코트디부아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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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코트디부아르 국제 열차. 딱딱한 플라스틱 좌석을 휴식처 삼아 36시간의 긴 이동 시간 동안 현지인과 함께 어울리며 여행했다. 버스 육로 입국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다.


드록바(Drogba)의 나라,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에서의 일이다. 여느 서아프리카 나라처럼 정부와 반군 사이에 갈등을 빚는 시국은 불안정했고, 뉴스에서는 거개 위태로운 정세와 음울한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정부와 반군 사이에서 지속된 내전은 소요와 시위 그리고 교전 등으로 형태로 이어지며, 2001년부터 10년 넘게 마땅히 누려야 할 이 땅의 평화를 유린하고 있었다.


불안함으로 얼룩진 공기는 국경으로 갈수록 더욱 을씨년스럽고, 거칠어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전역에 파다했다. 외국인은 서둘러 피신하거나 철수해서 아예 흔적도 없고, 치안은 무방비 상태라 만약 간다고 해도 강도 만날 확률이 200%라는 현지인의 진지한 충고에 육로 입국은 애초에 포기했다.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에서 열차를 타고 장장 36시간에 걸쳐 내려온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Abidjan). 낮고 두터운 구름 아래 흐린 시야, 정리되지 않는 도심과 날 선 감정을 숨긴 듯 무뚝뚝한 표정들. 내전의 여파 때문일까? 블랙 아프리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어디에서도 호기로움을 감추지 않았던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숙소 바깥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질서가 만들어 내는 먼지와 제 목적을 알리려는 사람과 사물들의 소음, 필라멘트가 훤히 보이는 백열등이 옅은 오렌지 빛을 비추는 혼곤한 골목으로 함부로 모험하지 않았다. 가끔 코트디부아르의 영어 이름인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의 내음을 맡고자 싶으면 옥상에 올라가 멀리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아비장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부르키나파소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얼마 간 잠잠하던 내전이 다시 발발할 거란 소식이 사람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건드리고 있었고, 언론과 소문 등을 통한 확대 재생산으로 오피셜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다음 예정지인 가나와의 육로 국경이 불과 이틀 전 전면 폐쇄되어 나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야 할 부르키나파소로 가는 열차 티켓마저 매진.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나는 그만 발이 묶여 버렸다.


불안함을 잠재울만한 어떤 희망적인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폭풍전야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루 두어 번 옥상에 올라갔다. 멀리 바다라도 볼 이유였지만 이틀 전부터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어딘가 담장 너머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20-30여분 정도니 그리 길지는 않았다. 확실히 연주는 서툴렀다. 연습하며 실력을 다듬는 중인 듯했다.


하나 사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감미로웠고, 나는 자꾸 옥상을 서성이며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나 오늘은 더욱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마냥 설레 왔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순간 믿기 힘든 감동이 일렁거렸다. 그는 무엇을 소망하며 이 곡을 연주하는 걸까? 전운이 감도는 이 밤에 진정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희망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다음 연주곡 때문에 하마터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곧이어 연주된 곡이 '북치는 소년(The Little Drummer Boy)'이었으므로.


연주자가 누군지도 몰랐다(후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외지인이 많지 않은 동네 특성상 주민 중 한 명일 거라는 추측성 답변만 들었다). 건물들의 층수가 다 달라 가리는 부분이 많았기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꼿발을 딛어도 실루엣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마음의 위로를 얻었으므로 괜히 고마웠다.


색소폰 연주는 내가 떠나기 전 사흘간 저녁 시간이면 늘,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한 여름의 아프리카에서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평화를 빼앗기고 가난과 불안에 시달리는 코트디부아르, 그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캐럴송은 연주되었던 것일까?


기묘함이 낭만으로 증폭된 2012년 어느 여름밤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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