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세계일주 #6]
생 루이(Saint-Louis)는 세네갈 제2의 도시이자 유네스코 지정 지역이기도 하다. 대서양의 거친 포말이 매력적이었던, 골목길의 쩌렁쩌렁한 수다가 인상적이었던, 현지인들 나름의 질서와 여행자를 향한 영업의 무질서가 혼재해 있던, 세네갈에서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한 곳.
사흘 동안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신나게 어울렸다. 때로는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살콤한 추억이 되리라 여기며... 그러나 환한 미소에 숨겨진, 그저 잠시 지나가는 이가 알아채기 쉽지 않은, 머무는 이의 녹록잖은 고단함을 설핏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식민시대의 잔상에 허우적대는 고단한 그들의 숨결들. 유희만 추구하다 역사를 놓쳐버리는 경솔한 여행자가 되지 말자 다짐하며 걸은 길이다.
4알에 500 세파프랑(한화 약 1200원)하던 망고. 세네갈과 말리의 망고가 알아준다는데 과즙이 많고 정말 달았다. 탐스러운 망고들이 시장 좌판이나 가게 매대에 놓일 때면 망고 하나만으로도 여행자의 입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아줌마, 망고 주세요." 만큼이나 이 순간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말이 뭐가 있을까? 과일 구입은 규모 있는 가게보다 좌판이나 리어카를 이용하는 걸 즐긴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으로 복작대는 곳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뒷골목 허름한 곳을 이용한다. 허름하고, 누추한 곳만의 냄새가 있다. 살가움이 있다. 소박한 행복을 파는 알싸한 끌림이 있다. 근거는, 내 감정이다.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대중교통 수단 자간자이(N' Diaga N' Diaye). 150 세파프랑. 정해진 출발 시각 없이 승객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로컬 버스는 거의 모든 아프리카 전역의 '국룰'이다. 때론 유리창이 없어 매연과 먼지가 들어오는 걸 불평할 수 있지만, 유리창이 없어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가는 것이 감사할 수도 있는... 마음먹기. 남녀 부동석이라는 무슬림권이지만 동양 청년에게는 호탕한 아줌마들 사이에 앉는 특권이 주어진다.
아재가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는 아프리카 로컬 버스를 탈 때마다 어렸을 적 버스 안내양 누나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차체를 때리고, 소리 질러 출발시키고, 또 세운다. 토큰이라고 있었다. 황동이나 백동, 적색, 갈색, 청은색 도금으로 주조된, 거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전 모양의 버스 티켓이다. 시내버스를 탈 때 돈 대신 내던 것이다. 이후 흔히 회수권이라고도 하는 종이로 된 승차권이 생기고(잘 찢어지거나 물에 젖을 수 있어서 가끔 난처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었다), 자동문과 버스 카드가 생기면서 안내양 누나들은 사라졌다. 편리함과 불필요함은 공존할 수 없는 체계 탓이다.
편리한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불편한 것을 감당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소외되고, 밀려나고, 고통스러워한다. 지금은 당시의 러다이트 운동(Luddite)을 조롱하며 비웃을지 모르지만 생사여탈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할 그들의 당황스러움과 처절함을 생각하면, 또 그 해당사항이 지금의 나와 내 가족의 현실이 걸려 있다면 당시의 과격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가끔은 조금 불필요하더라도, 조금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혼자'가 아닌 '느려도 같이' 걸을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이유다.
프랑스 식민시절 건축된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넘어 섬 안쪽으로 가보면 질서 없이 지어진 그들의 텁텁한 동네를 지나게 된다. 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의 이유가 된 잘 정돈된 프랑스풍 건물들보다 생기발랄한 분위기의 이곳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축구공 하나면 어디서나 떠들썩하는 아프리카 동네의 아이들. 순간, '짬뽕야구(공격 팀이 포수 보고, 1루나 2루까지 밖에 없으며, 도루는 반칙, 투수 없이 손으로 치는 추억의 동네 야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르완다에서 함께 야구를 해봤으니 추후 아프리카 여행할 때 기본적인 룰을 가르쳐 주고, 장비를 기증하고, 아이들과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가 될지 모를 녀석들의 전술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 사커. '우르르르~' 전법이다.
"사진 찍어 주세요!"
"그래, 치즈!"
"와~~~!"
아니, 이미지 확인도 하지 않나. 그저 찍힌 게 좋아 마냥 신나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 와서 귀여운 네 얼굴도 좀 보렴.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네들. 햇살 참 좋다. 두어 시간이면 빨래는 뽀송뽀송, 기분도 뽀송뽀송~.
육지와 섬을 잇는 패데르브(Pont Faidherbe, 프랑스 총독) 다리를 건너 만난 생 루이 섬.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여행자의 감각을 자극하며 관광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을 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그들은 배가 고프다. 오늘도 허탕일까? 예술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 어떻게 하나라도 팔기 위해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는 그들의 수고가 미안하고, 안타깝다. 하나의 작품을 팔기 위한 그들의 절절한 외침, "마이 프렌드, 마이 브라더." 덩치 큰 사내가 내게 굽실대는 모습, 식민지 시대에 그의 아버지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조아렸을 모습, 괜스레 애처롭다. 당당했으면 해.
그러고 보니, 그들을 노예 삼았던 적군의 동상이 도시의 중앙에, 상징처럼, 드높게 서 있다. 독립했음에도 쉬이 철거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도 사회 전반에 암약하는 위압적인 프랑스 정신이 무섭고, 두렵고, 겁나기 때문인 걸까?
마차 택시(약 150 세파프랑). 섬 중앙에서 끝까지 재미있게 타고 갈 수 있다. 당나귀 택시 '바로슈'도 있다. 가끔 열 두세 살 짜리 마부가 운전하더라도 당황하지 말도록. 면허증은 없지만 엄연히 길바닥 프로 마부니까. 채찍질이 노련하다.
수많은 배가 건조되고 있는 생 루이 해변가. 수백 척의 보트가 도열해 있는 장면이 압권이다. 바로 옆에서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타고 날치처럼 날아오르던 해변가 아이가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생 루이는 건물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소가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내게 내일 다시 들러달라고 했다. 사진을 달라는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손님들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찾는 게 아니라, 그 사진사가 인화된 사진을 가지고 다시 마을이나 가정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사진을 구입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사진 인화해서 내일 다시 들러주세요." 하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우편으로 보내주고 싶어 주소를 물어도 자기 집 주소를 아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서 수십 년 혹은 수 백 년을 살와 왔을 테니 그냥 인편이 훨씬 나은 것이다. 공동 작업이 많고, 대문 없이 삶의 오픈되어 사실상 마을 공동체로 살아가기에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할 테니.
보드라운 모래밭의 해변을 거닐다 문득 우리 갯벌이 생각나고, 개발한답시고 생태계를 망쳐놓은 관료들 생각하니 혈압이 오른다. 사회학 수업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의 모델을 제시한 브라질의 쿠리치바(Curitiba)에 대해 일장연설하시던 교수님 생각이 난다. 벌써 15년 전 이야기니, 경제 위기 속 최악의 범죄율을 자랑하는 브라질에서 지금도 녹색 성장을 기저로 한 꿈의 생태도시를 이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시장 겸 작업장. 매일 수만 마리의 생선들이 이곳에서 손질되고 팔려 나간다. 또한 수많은 탁자 위에 생선들이 말려지고 있다. 이 작업들을 하는 인부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 내몰려 있다. 이들과 비슷한 처지의 현지인들과 그들을 돕는 코이카 단원들의 이야기가 'MBC 코이카의 꿈 - 세네갈 편'에 방영된 적이 있다. 생계를 위해 악취가 풍기는 작업장으로 나와 매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소박한 꿈은 무엇일까? 그들의 작업장 바로 옆에 땅을 반으로 포개어 조성된 공동묘지가 아무 말 없이 모든 말은 다하는 것만 같다.
생선과 야채를 다듬고 있는 아주머니. 그리고 생 루이의 평범한 현지인 집 풍경과 아이들. 아프리카를 여행할수록 시혜적 자선이 아닌 함께 공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1659년 프랑스인들이 처음으로 서아프리카에 상륙한 땅 생 루이(카디널스 야구팀 연고지인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같은 이름). 불어를 쓰면서도 아프리카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고, 아프리카의 화려함으로 치장했으면서도 프랑스 식민시대의 그늘이 잔존해 있는 아이러니. 물론 단 며칠 간의 경험으로 그들의 생각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뭔가 터지지 않는 포텐셜의 야구 선수 같단 느낌, 그 까끌까끌한 느낌...
프랑스는 여행지로서 내게 좋은 추억을 안겨 주었지만 프랑스 식민시대에 대한, 그 노예제에 대한 불편함이었을까. 먹고, 놀고, 자고... 그렇게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행이라 해도 한 번은 진지하게 역사를 되물을 필요가 있는 곳이 생 루이가 아닌가 싶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또다시 거리의 예술가들이 내게 굽실 굽실거린다. 아이들과 어울렸던 즐거움은 사라지고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대신한다. 문득 프랑스가 노예를 매매하고 또 부린 대신 이 나라를 위해 남겨준 유산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윗 나라 모리타니아 사람들의 성난 주장이 귓가에 맴돈다.
"프랑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 바게트 굽는 법 말고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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