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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Nov 16. 2020

미안하다 축하한다

[낭만 그리스도인 #9]

    [낭만 그리스도인 #9] 미안하다 축하한다      


  『성원이 결혼식에 올 수 있어?』     


  도형이의 메시지다. 카톡 울림 후 화면을 보던 너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다. 너는 가끔씩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성원이랑은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겼다.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하고부터였나 보다. 육군을 다녀온 너와 장교로 복무한 성원이는 상황 때문에 서로 얼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둘 다 들어가 있는 단톡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되니 사라진 것 같다.      




  ‘NC 다이노스’가 창단한 해니, 9년 전이다. 너는 용지공원에서 성원이와 도형이랑 함께 ‘도원결의’를 맺는다. 대학 가서 여자 친구 사귀게 되면 연말마다 함께 모이자는 것이다. 창원에 살면서도 곧 죽어도 미라클 두산 베어스 팬임을 자처한 성원이, 동네에선 나름 공부머리가 있어 옆 동네 교대에 합격한 도형이 그리고 그리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스무 살 젊은 패기와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너. 모두 같은 고등학교, 같은 교회 고등부에서 다져진 찐 우정이지만 다음 해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나며 헤어져야 했다.      


  꽃이 피고 지고,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너는 나름대로 정신없이 또 열심히 살아낸다. 많진 않지만 성적 장학금도 받아봤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동남아 여행도 다녀와 봤으니 무난한 대학생활을 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길진 않았지만 캠퍼스 커플도 되어보고, 학자금 대출이 없었으니 이게 어디인가 싶다.      


  하지만 취업 한파는 너를 몹시 움츠러들게 한다. 휴학하고 또 졸업을 유예하며 버텼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대학원 진학도 고려해봤지만 문과인 까닭에 마땅히 인생을 걸고 공부할만한 전공도 보이지 않는다. 혹 용케 합격한다 해도 등록금 마련은 요원하고, 취업에 있어 앞날이 캄캄한 건 매한가지라 여긴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태부족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역시나 공무원만이 내 인생을 구원시켜줄 탈출구인가, 너는 생각한다. 그렇게 공부한 지 1년이 넘는다.      


  그 사이 도형이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성원이는 모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듣는다. 수험생활이 장기간으로 접어들고, 나이도 서른 줄에 접어들면서 너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나 집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는 처지다. 위축된 마음 때문일까, 교회 청년부 모임도 언제부턴가 나가지 않게 된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배민커넥트’다. 말하자면 배달의 민족에서 단기알바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요즘 알바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외식 플렉스 한 번 하는 것이나 수험서적 한 권 사는 것도 너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때문에 자율적으로 시간을 선택해 일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을 하기로 한다. 너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산책 겸 도보배달을 한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자전거를 끌고 주 20시간을 채울 때도 있다. 월세를 내야 하는 너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 너는 무력하고 때론 서글프기만 하다.     


  너는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지만 생존해야 하는 현실을 마냥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공부하다 말고 주 3-4회 틈틈이 배달을 나간다. 수입이 그리 많진 않다. 다리 근육이 찢어질 듯 페달을 밟으면 하늘이 노래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에 쥐는 건 시간당 만 원 정도, 그나마 배달 요청이 쉬지 않고 할당될 때 일이다. 어떨 땐 두 시간 동안 고작 만 원 남짓 벌 때도 있다. 오늘도 너는 오전 공부를 마치고 잠시 밖으로 나온다. 다행히 날씨가 좋다. 주말이라 점심시간 때부터 부지런히 배달 콜을 수행한다.    




  『성원이 결혼식에 올 수 있어?』     


  한창 배달 중일 때 도형이가 카톡을 보낸다. 며칠 전 성원이에게 오랜만에 의례적인 안부 인사와 함께 청첩장 링크가 전달된 터다. 결혼식은 부산에서 진행한다. 신부가 부산 쪽이란다. 너는 망설인다.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부산 왕복 차비만 12만 원에, 아직 취업 전이니 축의금 5만 원 그리고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민이다. 그래도 친구인데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너는 어쩐지 지금 모습이 초라하기만 하다. 얼마 간 호흡을 고르던 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미안, 그날 일이 있어서. 나 대신 축의금 부탁할게.』     


  너는 도형에게 카카오페이로 송금한다. 10만 원. 스물다섯 번 정도 배달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너의 일주일치 식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는 내심 미안하다. 얼굴 보고 마음껏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나게 찬양하며 청춘의 열정을 불태우던 고등부 예배 시간,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던 여름수련회, 공부하러 모였다가 치킨 먹으러 간 중간고사 기간, 저녁 시간 운동장에서 함께 농구하던 녀석과의 추억들이 아련하기만 하다. 너는 번잡한 마음 떨쳐내고자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며칠 뒤,      


  새로 판 단톡방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온다. 너를 제외한 친구들 대부분이 함께 있는 사진이다. 성원이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고, 모임 분위기는 그때 그 시절처럼 좋아 보인다. 너는 성원이가 너를 찾고, 안부를 물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순간 너는 가슴이 뻐근해진다. 가지 못한 미안함이 더욱 커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연민도 심해진다. 너는 공무원 합격만이 너의 존엄성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 낡고 쇠락한 거리 안쪽 모퉁이, 지층에 자리한 너의 방에서 너는 다시 책과의 고된 씨름을 시작한다.     


  그리고 낮게 읊조린다. ‘곧 한국 시리즈인데, 성원이도 경기 보려나.’     




  * 본문에 나오는 이름과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수정했습니다.


#크리스천결혼 #공무원 #고등부예배 #배민커넥트 #NC다이노스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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