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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Apr 19. 2021

"게으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기 사랑입니다."

'게으름'

    [M_Book #22] '게으름'     


  이 책이 그렇게 청년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던가. 크리스천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돌발적인 흐름으로 잠시 사고회로가 멈춘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 내용과 관련해 한 멤버가 고해성사와 같은 라이프 스토리를 꺼냈는데 그것이 저마다의 가슴에 파문을 일게 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누구에게도 나누지 못했던 속 얘기들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 한 멤버가 눈물범벅이 된 채 자신의 아픔을 나눴을 때 잠시 적요 속 공명의 시간이 이어졌다. 기묘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크리스천 독서모임 '하늘이음' - <게으름>

  

  저자는 책 소개대로 조국 교회의 참된 부흥과 그리스도인의 영적 각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교계의 대표적인 목회자다. 나 역시 그가 저술한 <교리묵상 기쁨>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게다가 이번 독서모임에 다루기로 한 신앙서적 <게으름>은 2000년대 중반 수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의 나태함을 깨워 영적 도전을 안겨준 책 아닌가. 때문에 게으름을 다룬 이 책을 추천하면서 청년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제법 영성 있는 시간을 보낼 거라 내심 흐뭇해했다. 그러나 예상은 무참히 빗나갔다. 책을 처음 접한 청년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스의 수도자 에바그리오 도 폰토가 얘기한 7대 죄악(교만, 질투, 탐욕, 분노, 탐식, 음욕, 게으름) 중 마지막으로 거론되는 게으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적해야 할까. 2004년,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그 기억을 되살려 2021년에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책에서 다룬 게으름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분석은 나쁘지 않았다. 새겨볼 만한 영감 있는 문장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문제는 적용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인식의 불편함이 없었던 나의 심사가 멤버들의 고뇌에 공감하는 지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이 좋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환경은 영원히 우리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극복하고 싸우면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p.37

  “게으름을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지금 자리를 털고 얼어나 부지런한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p.79

  “이 세상에는 우리의 치열한 섬김을 기다리는 선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두운 세상에서 불꽃처럼 섬기며 사십시오.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p.153

  “매일매일 분투하며 살아야만 할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민첩한 반응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p.121      


  가뜩이나 코로나 19로 어둠 속의 길을 걸어가며 그로기 상태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접하는 이런 문장을 접하고 맥이 탁 풀린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음을 절규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열심히, 잠을 이겨내며,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어 세상이 요구하는 자리에서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공황장애와 외로움 그리고 피폐한 심력으로 그렇게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살아라”란 조언은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지친 영혼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위로와 근원적인 영적 안내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저자의 혜안은 탁월하다. “게으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기 사랑입니다.”(p.45),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지 못하는 결단을 수없이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결단대로 살아서 열매 맺은 사람들의 나라입니다.”(p.149), “삶의 영역을 떠난 신앙은 의무를 저버린 신앙이며, 의무를 저버린 신앙은 한낱 영적 유희일 뿐입니다.”(p.197) 등의 말은 청년들에게 청량감 있는 깨우침을 준다. 당연하게도 현재 나태하고 게으른 영적 상황을 은밀하게 즐기며 하릴없이 표류하는 인생에겐 생의 감각을 깨울 각성제가 될 것이다. 영적 도약을 위한 나침반이 필요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유의미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다만 방향성과 시의성이 맞지 않았었던 것 같다.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분위기는 책의 내용처럼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좌절시키고, 청년들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19는 말할 것도 없고, LH 땅투기와 같은 무너진 사회 정의, 부동산 버블, 취업 대란과 같은 절망적인 사회 지표들 그리고 일상에서의 관계의 문제 등을 단순히 게으름을 대적하는 것으로 풀어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지쳤다. 안아줌이 필요하다.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번 독서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의 특징이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2004년 출간된 <게으름>을 선택해 하루하루 힘겹게 발버둥 치는 청년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하려 했던 내 실수를 깨끗이 인정한다. 책이 주는 영적 유익은 분명하되, 다만 다른 영적 유익이 필요했던 대상과의 케미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감사하게도 한 멤버가 눈물을 쏟고 난 후, 서로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과 그 마음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또한 나와 다르지 않는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존재가 무엇보다 위로의 선물이 되었다. 그들은 오늘도 사명의 자리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밤을 잊을 만큼 열중할 것이다. 어깨에 얹어진 짐이 결코 가볍지 않지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분전하고 있는 아름다운 청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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