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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Aug 19. 2020

선교적 교회의 출사표 그리고 닭강정

[낭만 그리스도인 #4]

  [낭만 그리스도인 #4] 선교적 교회의 출사표 그리고 닭강정     


  잿빛 구름 사이로 햇살은 드문드문 쏟아졌고, 허기에 지친 발걸음은 점차 무뎌졌다. 무엇 때문에 굳이 강동에서 강서까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왔던 것일까. 카운터에 다소곳이 앉아 가만히 바깥을 응시하는 주인장을 본 순간, 나는 방문 목적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닭강정!”     


  유사 이래 치킨이 있는 곳에 다툼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구글을 검색해도 닭다리로 맞았다는 실제 사례는 검색되지 않았다. 거개 부흥하는 교회 대학부(청년부)는 말씀과 기도, 찬양 그리고 치킨의 사위일체가 균형을 이룬다. 청년 사역의 알파와 오메가는 치킨이다. 주님의 몸 된 공동체의 교제 속에 치킨이 없다는 상상을 하자니 그만 몸서리가 쳐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뜸 주인장의 호칭을 불렀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손님의 수상한 외침에 짐짓 당황하던 주인장에게 차분히 이곳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봄 처치(BomChurch)’ 김성민 목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개척교회에 관한 그의 솔직 담백한 자기 고백적 내용들이 퍽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업로드된 그의 영상에서 별안간 닭강정 가게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페 교회는 많이 봤지만 닭강정 가게를 운영하는 교회라니…. 선교적 교회를 꿈꾸는 그의 도전에 호기심도 일고, 격려차 매출 올리러 한 번 방문해봐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십자가가 걸려 있지 않은 곳이, 성경책 한 권 없는 곳이 어떻게 교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은 단지 물적 자원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계획,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고 행해지는 거룩한 하나님의 뜻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이 있는 모든 곳이 교회가 아니겠는가.      


  “정말 닭강정을 파느냐?” 되물어볼 만큼 가게 인테리어는 모던하고, 심플했다. 더구나 ‘원 테이블’이라 차 한 잔 나누기에 더없이 아늑한 공간이었다. 좋았다, 느낌이. 오래 머물다 가고 싶은 편안한 공간, 누구에게나 추억 속에 서린 청년부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너를응원해     


  닭강정 가게 상호다. 감각 있다. 가난한 마음을 파고든다. 다섯 글자에 주인장의 철학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이 짧은 한마디가 필요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닭강정 한 박스면 또 얼마나 벅찬 격려와 깊은 위로가 되겠는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진정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 닭강정 한 박스 주문하라. 오늘 한 영혼에게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한 안식을 주리라.      


  테이블 위에는 가게를 차리게 된 이유와 목적이 기록된 소책자가 놓여 있었다. 책장을 넘기니 내 발걸음을 이끌게 한 창업 스토리가 퍽이나 목회자다우면서도, 치열한 목회 현실에 직면한 솔직함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작은 가게다 보니 심플한 화이트 톤의 벽 곳곳에 꾸며진 소품들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이 집의 존재적 가치와 환대의 이유는 다름 아닌 ‘닭강정’이다. 나는 주인장 그러니까 목사님이 건네준 에이드와 함께 얼마간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서 일탈을 일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삯꾼 목사들을 제외한) 20세기 목회자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본받아야 할 신앙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 속에 목회 환경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없이 그저 맹목적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교회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젊은 목회자들에게 이상(理想)이 되지 못한다.      


  사명을 점검하고, 지혜를 간구하는 동기는 고집스레 요구되는 기존 교회의 질서가 아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부활의 영광이다. 그 은혜가 허락되는 곳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예배당뿐만이 아니다. 믿음의 자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전통 목회 방식에만 아닌,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지혜가 필요하다.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in omnes charitas), 숱한 기독교 사상가들과 목회자들이 외쳤다는 이 말을 적용하는 곳이 바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요, 적용하는 것이 ‘선교적 목회(Missional ministry)’다. 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무장해 정치적 발언과 번영 신학을 일삼는 설교 한 자락보다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닭강정 하나가 잃어버린 영혼에게 보다 더 따뜻하게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지 않겠는가.      



  <너를 응원해>, 닭강정 가게에 손님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물론 가게이니만큼 이문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지속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이곳이 지친 날들에 위로가 되는 작은 예배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든,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든 이곳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사랑하며, 예수께 묻는 그런 곳 말이다. 이것을 이끄는 힘은 눈물로 시를 쓰는 기도요, 땀 흘리며 노력하며 만든 닭강정 맛이 될 것이다.      


  나는, 한 마리 깨끗하게 비웠다.



#낭만그리스도인 #독서모임 #기독교 #청년부 #크리스천 #신앙상담 #복음주의 #개혁주의 #세계일주 #에세이 #너를응원해 #닭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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