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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Aug 18. 2020

알 수 없는 인생

[낭만 그리스도인 #3]

  [낭만 그리스도인 #3] 알 수 없는 인생


  회계법인 취업이 간절했던 다정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면접을 앞두고 전공 관련 문제를 보기보다 기도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녀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사실 20대 중반까지 교회와는 담을 쌓았던 그녀다. 도무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기 어려웠거니와 크리스천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면 진짜 하나님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은혜가 찾아든 것이다.      



  

  다정이 대학을 다니며 수학 과외 교사를 할 적에, 일요일마다 교회 다니는 학생과 옥신각신해야만 했다. 확실한 성적이 담보되기 위해서 기말고사 등을 앞두고는 교회 출석을 최대한 자제하고,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학생은 고개만 끄덕거릴 뿐 본인도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교회가 좋았다. 마음 편한 친구들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녀석의 하루 루틴 중 하나는 항상 학교 가기 전 예배당에 들러 잠시 기도하는 것이었다. 고요한 분위기, 절대자에게 고백하는 속마음, 그런 게 좋았단다.      


  이유야 어쨌든 책임감이 남달랐던 다정은 늦은 만큼의 시간을 보충해야 직성이 풀렸다. 학생의 성적이 곧 자신의 티칭 능력과 직결되는 만큼 결코 소홀할 수 없었다. 학생 역시 열혈 과외 교사를 만나 까다로운 수리 영역에서 제법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 시험을 앞두고 교회 가는 것에 대한 입장 차이만 빼면 다른 부분은 대체로 쿵작이 잘 맞았다. 가끔씩 챙겨주는 간식 때문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과외 교사 본분인 열정적인 가르침과 학생과의 유대감 그리고 모두가 바라는 결과만큼은 확실히 만들어 냈으니까.      




  다시 회계법인 면접장,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건 경쟁률뿐만 아니었다. 같이 지원한 지원자들의 실력을 흘깃 보아도 회계직렬에 대한 이해는 물론 영어 구사 능력 등이 자신보다 훨씬 월등해 보였다. 게다가 외모들은 또 왜 이렇게 하나같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된 건지. 진검 승부를 벌이기도 전에 잔뜩 위축되었다. 도무지 자신이 선택될 것 같지 않았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기쁨도 잠시, 최종 합격이 되지 않는다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그녀가 면접장에서 간절하게 기도한 이유다.      


  하지만 아직 신앙이 성장하고 있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다정의 기도는 어딘지 모르게 순박한 면이 있었다. 그녀는 “이 회계 법인에 꼭 취업하게 해 달라”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자신이 합격하면 남들이 떨어지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제 옆에 경쟁자가 같이 준비 중인 S 그룹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시간이 흐르고,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왔다. 내심 기대하며 클릭, 그러나 불합격.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험에 떨어졌다면 원망과 불평할 이유가 없다. 원망과 불평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최선을 다했고, 순전한 마음으로 구했으니 그거면 됐다. 그녀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종로의 한 보쌈집에서 만난 그녀는 ‘웃픈’ 고백을 해왔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요! 제 기도에 응답하셨어요. 세상에, 그 친구 정말 S 그룹에 들어갔다니까요. 근데… 난 떨어졌네. 내 기도를 안 해서 그런가 봐요. 다음부턴 확실하게 기도해야겠어요, 나 합격하게 해달라고.” 

  결국 주님은 간구를 들어주시고(?), 합격은 제3자가 했단다.      




  과외 교사를 하던 중, 다정은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가게 되었다. 선입견 때문에 크리스천에 대한 큰 기대는 안 했지만 하나는 좋았단다.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예수님이란 분이 있다는 거.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금은 담당 목사님의 신임을 받으며 청년부 임원을 섬기고 있다. 어쩌다 보니 교회에서 어미 새가 되어 누나 언니 노릇을 하고 있고, 또 어쩌다 보니 공동체 대표 기도를 스스럼없이 하고, 그렇게 단기 선교를 가고, 부서 공간 청소를 하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다. 이제는 은혜 없이 못 사는 찐 크리스천이 된 그녀.      


  다정은 자신의 회계법인 취업 실패 썰을 풀더니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때 그 과외 했던 학생이 지금은 같은 교회 청년부에서 함께 활동 중이라는 사실, 소름…. 


© acharki95, 출처 Unsplash



  * 본문에 나오는 이름과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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