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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Aug 20. 2020

고집 좀 꺾으면 어때? 네가 행복하면 됐지

[낭만 그리스도인 #5]

  [낭만 그리스도인 #5] 고집 좀 꺾으면 어때? 네가 행복하면 됐지


  “부대찌개 먹으면 안 될까요?”     


  녀석은 대뜸 부대찌개 타령을 했다. 예전부터 먹고 싶었단다.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를 생각하면 시원한 면류를, 스무 한 살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간의 경험에 비춰 파스타, 고기류, 일식(단품) 중 하나를 예상했었다. 만약 “아무거나요, 다 좋아요.”라고 했으면 내심 극도의 고소함이 황홀함을 안겨주는 콩국수의 길로 인도하려했었다.   


  기대는 무너졌다. ‘MEET(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를 준비한다는 녀석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으니 마냥 내 소신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부대찌개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역대급 햄 폭탄이 투하된 바닥까지 긁었고, 점심의 만찬은 공부하는 녀석을 위한 축복 기도와 흡족한 맛 비평으로 마무리 되었다.    


  * 콩국수, 기호에 따라 수박과 오이, 토마토 등을 얹고 설탕을 담뿍 넣어 먹는 시원한 여름 별미. 사시사철 ‘치킨 앤 콜라’가 나의 영육을 강건하게 해준다면 콩국수는 여름 한철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다음 날, 숨 막히는 대학 입시의 치열함과 한국 교육 현장의 혼돈(어느 땐 안 그랬겠냐만;;)을 온 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재수 중인 녀석을 만났다. 재수학원과 회사가 밀집한 강남은 번화가답게 각종 먹거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녀석의 픽은 부대찌개.      


  “정말?”, “네.”, “다른 것도 괜찮아, 찜닭이라든가, 짜장에 탕수육도.”, “아니에요, 오늘은 부대찌개 먹을게요.” 이틀 연속 부대찌개로 20대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퍽 생경스러운 일이다. 요즘 TV나 유튜브 먹방 채널에서 부대찌개가 유행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깊고 오묘한 국물 맛이 일품인 부대찌개로 재수 중인 녀석 축복 기도 및 격려하기 미션 완료.  


  그리고 그 다음 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이 회사 조직에 적응 중인 청년과 간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만났는데, 세상에 그 친구의 선택 또한 부대찌개였던 것이다! 마늘이 듬뿍 들어간 데다 치즈까지 풍미를 더해준다는 이유로 해맑게 기대하고 있는 그 얼굴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냐며 웃어 넘겼고, 결론적으로 마늘과 치즈의 조합이 기가 막혔으므로 나는 다시 바닥을 다 긁을 수밖에 없었다.     


  청년들의 픽은 모두 부대찌개였다. 유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좋았다. 만남의 목적은 음식이 아니다. 관계다. 격려하고, 기도하고, 내가 네 편이라는, 너를 응원한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시답잖은 ‘초(超)이기주의’가 발현되었다면 아마 내가 원하는 메뉴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었을지 모른다. 시원한 콩국수는 혼자 먹어도 맛있다. 치킨은 언제나 9시 넘어 집 근처 KFC 가면 행복을 안겨준다.      


  언제부턴가 분노와 분열이 일상인 나라가 됐다. 조금만 결이 달라도 선동과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무엇이 그렇게 악에 받쳐 분을 내게 만드는 걸까? 도대체 왜 핏대 세워가며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말 한 마디로 서로를 세워주고, 살려주면 좋을 텐데, 작은 행동 하나로 세상을 행복하게, 가치 있게 만들면 좋을 텐데. (이상주의라고 매도해도) 그렇게 되면 참 좋을 텐데.        


  3일 연속 같은 메뉴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추천한 부대찌개 집들 가서 맛있게 먹고, 이야기 나눴더니 관계가 한층 더 돈독해진 느낌이다(나만 그런가 ^^;;). 그래, 고집 좀 꺾으면 어때? 네가 행복하면 됐지. 손해 좀 보면 어때? 다음에 좋은 일 생기면 됐지. 일이 좀 안 풀리면 어때? 내 옆에 네가 있으면 됐지. 주님이 바라는 건 만사에 하나님을 묵상하고, 우리가 서로 친밀해지는 건데.      


  사흘 연속 먹은 부대찌개: "당신이 행복하면 뭐든 좋습니다. 물론 함께, 치킨이면 더욱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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