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M_Book #30]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린도전서 10:32-33
1832년, 칼 귀츨라프에 의해 조선 땅에 복음 전파가 시도된 이래 한국 교회가 부흥하는 데 있어 여성들의 역할은 실로 지대했다. 지금도 신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순전한 기도와 눈물 어린 헌신이 없었다면 주님의 몸 된 공동체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오랫동안 무지성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일부 여성들이 상처 받고, 공동체를 떠나기도 했음에 교회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말씀의 기반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공동체가 교회고, 신자 각자가 모두 교회로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여러 산적한 문제와 더불어 이 일 역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서 이 책은 교회 다니는 남녀가 꼭 읽어봐야 한다. 혹시 페미니즘 도서? 그랬다면 이 책을 크리스천 독서모임 리스트로 무리하게 선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성해방 등 특정한 신념과 가치를 목적으로 성경을 끌어다 해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떠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도리어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깊이 있는 사색과 해석을 통해 현상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아닌 성경의 정확한 해석을 지향하기에 오히려 여성에 대한 시각을 객관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지성적 힘이자 영적 자유함이 된다.
135 페이지라는 비교적 짧은 페이지 안에는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이라는 소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농밀하게 녹아 있다. 저자 김세윤 교수의 장점은 이것이다. 그에게는 에이든 토저와 같은 확신에 찬 믿음이 있다. 성경의 본질을 살리되 맥락을 깊이 살피고 해석하려는 고뇌와 분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짧은 행간에서 여성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한국 교회가 저지르는 어떠한 과오에 대해 지적하기를 거침이 없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읽는 내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지혜를 주시고, 또한 진리를 향해 몸부림치는 교회를 사랑함이 느껴졌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이 지금보다 훨씬 반발이 거셌을 20년 전 발표한 세미나 내용에 기반한 것이라는 사실이고, 여전히 한국 교회 내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 또한 적잖이 충격이다. 무엇보다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마땅히 동반자적 연합과 동행을 가르쳐야 할 교회에서 말이다(그렇다고 시류를 틈타 페미니즘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 또한 반대다. 처음 서구에서 태동한 그 찬란히 빛났던 평등주의 정신이 작금의 한국 사회에선 선동과 편 가르기, 또한 지나친 이기주의의 추태로 본질이 오염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연히 남성 우월 사상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과 존엄성의 문제다. 교회는 성경대로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 차이를 인정하되 다른 부분에선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하면 된다.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 데 있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는 여성이 차별당하는 구태를 답습하지 않는 데 있다. 기본적인 권리와 책임을 남성과 함께 지되, 필요한 부분에서는 보호하는 정책(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등)도 물론 병행해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혐오를 자양분 삼아 남성이 소외되거나 역차별당하는 일은 물론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파하는 교회가 그 일에 가장 먼저 앞서야 한다.
‘형제 셋, 자매 넷’으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에서는 전통적인 관습의 틀을 고민하고,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 꽤나 마음을 열어 젖힌 대화들이 오고 갔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기존 신앙서적에서 만날 수 없었던 책 내용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구약시대에 타락으로 인해 낮아진 여성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킨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민감할만한 주제임에도 서로 존중하는 배려 속에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온화했고, 특히 청년부에서 이러한 신앙 토론 문화가 활발해지길 바람들이 있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 다룰 것이 많지만 다음에 정리해 보기로 한다. 다만 멤버들과 공감이 깊었던, 한 번 더 음미해 볼만한 문장들을 우선 기록해 둔다. 독서모임 멤버 모집 때 책에 대한 기대를 브런치에 간단히 작성했는데, 그 기대가 틀리지 않아 흡족한 마음이다. 다시 한번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되는 당연한 이치가 한국 교회 안에 상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그럼으로 혐오와 배제가 아닌 협력과 상생의 길을 함께 가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 고전 11:11
"이 책은 페미니즘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성 우월적인 시각을 가진 계몽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여성을 대하는 성경의 뜻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20여 년 전, 시대를 앞서간 한 신학자의 여성에 대한 쉽고도 깊이 있는 담론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게 하는, 크리스천 남녀 모두의 필독서입니다." - <하늘이음> 4기 독서모임 멤버 모집글 중
밑줄 친 문장들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열등하다는 뜻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배필’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네게드는 그냥 ‘상대자’를 뜻하고, ‘돕는’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에제르는 ‘도움’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에제르, 즉 ‘도움’이라는 문구가 가끔 나오기 때문입니다.” p.22-23
“또 다른 옛 창조의 전형적인 구분들인 남녀 차별도, 사회 신분적 구분인 노예와 상전의 구분도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에서는 옛 창조 질서 속에서 불의와 불평등과 갈등과 압제와 착취와 굴종 등을 가져오는 인종적 구분, 성적 구분, 사회 신분적 구분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p.30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항상 노예해방이 일어나고, 여성해방이 일어나며, 만민의 인권 의식이 증진되고, 모든 인종을 초월한 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곧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p.58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과 새 창조의 질서 속에는 불평등과 불의를 가져오는 이 세상의 모든 차별이 해소되었습니다.” p.58
“누가에 따르면 사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입니다(눅 24:1-12).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들을 복음의 첫 선포자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성을 극도로 차별했던 유대교 출신이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여자들에 의해서 선포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불법이요 무효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서들에 그 사실을 당당하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p.38
“오늘날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여성 권리의 쟁취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를 그 관점에서만 보고 그것만 쟁취하려 매진하면서, 인간의 죄악성을 제거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여성 차별의 문제도 해결하려는 지혜를 거부하고, 문화적 적응이라는 점진적인 개선책의 지혜도 거부합니다. 그리하여 완고한 반동주의자들의 역풍을 맞아 도리어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p.50
“예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나병 환자를 만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더러워졌습니까? 바리새의 원칙에 따르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나병 환자가 깨끗해졌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를 만져서 예수가 더러워진 게 아니고 혈루증 앓는 여인이 깨끗해졌습니다. 죄인들과 창기들과 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에서 예수께서 더러워진 것이 아니고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p,67-68
“성령에 힘입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가진 자를 압도한다는 뜻입니다.” p.68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 주심”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정의이고 기준입니다. 자기를 내어 줌(self-giving)입니다. 이것은 자기주장(self-assertion)의 반대말입니다. 자기희생으로서의 ‘사랑’은 ‘복종’의 다소 제한된 개념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자아 전체의 희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복종’도 일종의 자기희생이지만, 사랑은 ‘복종’을 포함하는 더 총체적 자기희생인 것입니다.” p.99
#북모임 #책모임 #독서토론 #기독교 #독서모임 #신앙도서 #신앙서적 #북클럽 #청년부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