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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Aug 11. 2021

이벤트에 목숨 걸지 마라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7]

  * 주의, 꼰대 유부남의 편협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장장 6시간이 걸렸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 준비 말이다. 가뜩이나 손재주가 없는데 유튜브에 나오는 가이드에 따라 서툴지만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은박 커튼 고정 문제로 에어컨을 틀지 못해 내내 땀이 흥건한 채로 몰입해야 했지만, 누군가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다는 건 역시나 행복한 일이다. 가랜드며 풍선, 캔들 그리고 여러 장식들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아내의 깜짝 놀란 표정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는 것, 사랑은 나의 수고를 상대방과 비교하지 않는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아내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서둘러야 했다.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 돌린 것들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아내보다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와 선물들을 세팅하고, 이벤트의 화룡점정이 될 소고기 스테이크도 구워보았다. 이런 일에 센스가 없다 보니 겨우 구색만 갖추게 되었고, 생각 외로 체력 싸움이 된 지라 몸이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달떠 있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준다는 것은 그렇게나 신나는 일이다. 힘이 나는 일이다. 몹시 고마운 일이다.   

   


  아내가 웃는다. “뭘 고생스럽게 이런 걸 준비했냐”며 환한 미소를 짓는 아내는 내게도 행복이다. 한편으론 얼마든지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을 만나서 한없이 기대치를 낮추고(?) 살아감이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매번 ‘이 사람이 날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적절한 부담이 부부 관계를 흐트러지지 않게 만든다. 평생 책임감과 성실함을 삶의 기조로 살아온 아내의 표정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된다. 그러니 아내가 웃게 된다면 대개는 옳고 선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 지금은 다행히, 아내가 웃는다.      


  생각보다 채끝 등심 스테이크의 풍미가 깊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까닭에 탄산수에 자몽청을 담아 마시면서도 제법 무드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한 고생에 대해 격려받고 난 뒤 이어진 선물 증정식도 다행히 호평 일색이다. 나는 발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운동화를 준비했고, 어머니는 아내의 생일을 격하게 축하하며 나이에 맞는 용돈을 보내셨다. 또 지인들의 선물 러시는 아내가 그간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겸손히 사랑으로 행했는지를 가늠해 보게 된다.      



  오늘의 주인공이 빛날수록 내게도 더 밝은 빛이 비쳤다. 내가 빛나지 않아도, 누군가를 빛나게 만드는 일은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사랑은 상대방을 빛나게 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그 빛이 곧 내게도 조명되며, 어딘가 감춰진 마음속 어두움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니 아내의 모든 순간이 환해질 수만 있다면 나는 불쏘시개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이렇게나 행복한 생일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이벤트를 그리 잘 챙기지 않는다. 이 말에 서운해할 연인이나 부부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내와 내 생각은 확고하다. 평소에 잘하자는 것이다. 일상에서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알고 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몇 년 동안 함께 하면서 딱히 요란한 이벤트라고 할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케이크에 실용적인 선물 정도로 무난하게 보냈다. 그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더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가장 멋진 이벤트는 건강관리를 잘해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 없음’이 나오는 것이다. 각자의 일터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하게 완수하고, 결과물을 보고하는 자리다. 서로의 부모님께 크로스로 자주 안부를 물어봐 주며, 형제자매 가족들을 잘 챙겨주는 것이다. 매일 자기 전, 우리 가정과 주변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이고, 집 안이 더러워지지 않게 제때 청소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며 서로의 소소한 일과를 경청하고, 수고했다고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진짜 행복한 이벤트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2022년, 아내의 생일 이벤트 구상은 이미 끝마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벤트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보다 곡진한 마음으로 평소에 더 소중히 대하기를 다짐한다. 그렇게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다가 언젠가 하늘나라 가는 날, 신께서 나에게 지상에서의 삶이 어떠했냐고 묻는다면. “나의 모든 사랑을 다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무척 행복했노라”고, “아내도 분명 나 때문에 행복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인연을 맺어주셔서 참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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