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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by 시크seek

[M_Book #32]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SE-3b26e5e0-ce90-406d-8c40-e5914f3ad5f4.png 크리스천 독서모임 [하늘이음 4기]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독서토론 중


얼마 전의 일이다. 지인의 장모님이 급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사인은 심장마비. 전날까지 멀쩡하게 잘 지내시다 새벽에 별안간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지인의 아내와도 친분이 있었기에, 나와 아내는 각자 다른 일로 외출했다가 곧장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 곳으로 출타하는 일정이었지만 황망한 지인을 위로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번엔 또 다른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했다. 뇌종양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와 아내는 이번에도 할 수 있는 한 빨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삶의 한 자락의 상실로 슬픔에 압도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 애달픈 흐느낌을 가만히 안아주는 것이었다.


심장마비와 뇌종양이라는 죽음의 이유는 달랐지만, 두 곳의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주는 오열했고, 가족들은 힘없이 흐느꼈으며, 또 한쪽에서는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고인과 친했던 지인들은 신발을 벗자마자 상주와 부둥켜안고 서럽게 대성통곡을 하는데, 바라보는 나조차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차오르는 슬픔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건, 돌아가신 분들의 삶의 자리가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와서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고인에 대한 기억들을 오랜만의 안부와 함께 나누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또 오랫동안 버티며 맞섰던 죽음이었지만 그 죽음은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남아 있는 이들에게 현재 삶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죽음을 대하는 곳이 비단 장례식장뿐만은 아니다. 책을 통해서도 죽음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그게 바로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의사들의 에세이는 언제나 묵직한 여운을 준다. 노먼 베쑨으로 시작해 박경철, 이국종, 남궁인 그리고 김범석으로 이어지는 책들은 자신만의 통찰과 치열한 현장 경험을 살려 죽음을 재해석한다. 한 번 페이지를 넘기면 책을 덮을 수 없는 이유다.


김범석 교수의 책도 그렇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자는 지금 삶의 자리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영면을 앞두고서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에피소드들을 뒤적이다 보면 코끝이 찡해지며 내 안에 감춰 둔 여린 감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론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겸손해질 것 같은 삶의 마지막 모습이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스토리를 읽다가 드는 인간 본연에 대한 회의감도 의사들의 시선을 빌리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응급의학과와 종양내과의 차이일까. 「만약은 없다」 남궁인 교수가 생과 사의 처연한 갈림길을 자신의 철학을 덧댄 치열한 묘사로 독자의 감정선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골든 아워」 이국종 교수가 대한민국 의료 현실의 척박하고 냉혹한 현실과 맞서 싸운 악전고투의 기록을 남겼다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교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냉엄한 현실 앞에 ‘남은 자’와 ‘남은 날들’에 대한 의미를 환기시키며, 덤덤하게 지금의 최선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이 책은 환자와 보호자, 의사 각각의 입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죽음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삶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암과 항암치료, 가족의 임종, 기적, 의료윤리, 연명의료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보통의 자기계발서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방법론을 제시한다면, 이 책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지금 선물로 주어진 내 삶의 자리를 반추하게 한다. 살면서 당연한 것이라 느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독서모임 멤버들의 서평 일부분으로 이 책의 서평을 갈무리한다.


나에게 성경에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비삭」을 꼽는다. 아비삭은 다윗이 죽어갈 때에 그의 곁을 지켰던 인물이다. 너무나 대단했던 다윗도 죽음 앞에선 초라하다. 심지어 그렇게 죄를 지어가면서까지 사랑했던 밧세바도 약해진 다윗에게 찾아와서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힐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다윗에게 잘 보이려 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가고, 초라한 다윗에게는 그저 아비삭만이 있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와 걷자', '나와 함께하자', '나와 동행하자'라고 하시는데, ‘값없이 주어진 십자가 은혜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된다’고 하시는데, 나는 왜 자꾸 엉뚱한 곳에서 나의 삶의 가치를 증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할까?

너무나 다행인 것 한 가지는, 아직도 이렇게 흔들리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삶이지만, 비록 유한한 이 땅에서의 삶이지만, 내가 살고 싶은 "삶"과 내가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간극이 조금씩 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돌보려 하기 이전에 나를 돌보고 보살피는 연습을 하고 있고, 미래의 특별한 어느 순간을 위해 현실을 견디고 의미 부여하기보다는 오늘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일상을 공유하며 누리는 기쁨을 배워가고 있다.

참, 다행이다.


+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이 책이 주는 여운이 짙었나 보다. 서평들의 깊이는 더해졌고, 우리는 크리스천의 관점으로 오랫동안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작가가 <유퀴즈>에 출연했을 당시, 그에게 진료받은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한 유튜브 댓글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두고 읽은 적이 있다. 심지어 우리 가족도 김범석 교수와 짧은 인연이 있다. 유튜브의 댓글과 다르지 않게 경험자에게서 실제로 정말 괜찮은 교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의 마지막을 덮고 나서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새롭게 일어서야 하는 위로를 받게 되었다. 위에 언급된 의사들의 에세이와 특히 닥터 노먼 베쑨의 평전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이사야 57:2)


밑줄 그은 문장들


"내가 죽은 뒤에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p.24

"삶에서 고난은 불가피하다고 부처는 말했다. ... 생각해보면 암도 마찬가지다. 암에 걸린 뒤에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들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 ... 그러니 고통이나 힘든 일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마땅히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p.56

“가족이어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만큼 서로 모르는 존재도 없지 싶다. …언제나 ‘가족이니까’와 ‘가족인데 뭐 어때’ 그 언저리에서 누구보다 가장 모르는 존재가 되기 쉬운 것이 가족인 것만 같다.” p.70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해도 상처는 쌓이면 곪고 후회는 깊고 아쉬움은 길다. 아니, 아마도 피를 나눈 사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가족이 가족이기 위해서는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p. 71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p.95-96

"암 투병은 환자도 가족도 모두 지치는 일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이어져가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랑도 남루해지기 쉽고 희망도 쉽게 잃는다. ... 그러니 희망 없는 속에서도 그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암 덩어리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기적이었다." p.106

“모든 관계에는 거리와 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며 서로 적절한 선, 편안한 거리를 찾는다. 그 적정 수준은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에 의해 결정되고, 관계의 깊이는 다시 여러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만남의 빈도, 감정적 교류, 공동의 목표의식, 서로 간의 이해관계, 두 사람의 친밀도, 성향, 심리적 거리, 그리고 물리적 거리 등. 그런데 이때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적절한 거리는 다를 수 있다.” p.153-154

"뭔가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승리에 환호하지만 지지 않음에는 환호하지 않는다. …과시할만한 승리는 아니라고 해도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지 않는 것도 패배는 아니니까."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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