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교사가 된 이유
"왜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마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일 겁니다. 학생 때는 "왜 교사가 되고 싶어?"였고, 교대생 때는 "왜 교대에 왔어?"였습니다. 교사가 되니 "왜 교사가 됐어요?"로 형태만 바뀌었습니다. 면접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사실 학생 땐 왜 이걸 이렇게 많이 물어봐, 싶었지만 이젠 제가 물어보고 다니곤 합니다. 대답도 각양 각색, 재미있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을 몇 가지 들려드릴게요.
제 가장 친한 동기 중 한 명인 H는 한 편의 기억이 자신을 교직으로 이끌었다고 답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청소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청소를 위해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야 했는데, 선생님이 "자, 다들 책상을 의자 위에 올리세요."라는 말실수를 하셨대요. 다들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는데, H만 이상함을 느끼고 휙! 선생님을 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H에게만 찡긋, 눈짓을 하시고는 "우리 반에 선생님 말을 제대로 듣는 건 H 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농담과 칭찬에 붕 떴을 어린 H도, 아이의 사소한 행동도 바로 캐치해 주신 H의 선생님도, 어리둥절했을 같은 반 아이들도,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이 작은 기억이 H를 교단에 서게 했다니, 인생이란 참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질문에는 이런 사랑스러운 대답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원하셔서, 안정감이 좋아서, 성적에 맞춰서라는 대답도 많이 나와요.
제 애인 K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해서 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능 성적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에 가기엔 살짝 모자랐고, 스스로도 치열한 삶보단 여유로운 삶을 원해서 교대에 왔대요.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혔더라면, 그는 아마 교대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아마 교사가 될 일도, 저와 만날 일도 없었겠죠? 이런 이유로 교사가 된 그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학생들을 위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사비를 털어 미술 준비물을 마련해 가는 그를 보면 내 남자친구지만 대단하다, 싶어요. (새내기 교사의 월급은 생각보다 작고 귀엽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으셨대요. 하지만 부모님의 끈질긴 회유와 설득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교대에 지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웬걸요, 지금 선생님 반에서는 방과 후 보충 수업이 끊이질 않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보충이 필요한 아이들을 데리고 방과 후 수업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선생님의 업무가 제 3~4배는 될 텐데 말이죠. 넘치는 업무를 처리하고자 한 시간 일찍 출근하시는 걸로 모자라, 집까지 업무를 싸들고 가시면서도 아이들을 최우선시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이런 걸 보면 교사가 된 이유는 사실 그리 중요치 않은 듯합니다. 교사가 된 후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제가 교사가 된 이유는 엄청 거창한데요.. 지금 제 모습을 보면 살짝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그래도 이 글의 주제인 만큼, 용기 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제가 교사가 된 이유는, 교사는 세상을 바꾸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세 사람을 바꾸고, 그 세 사람이 자기 주변의 세 사람을 바꿔간다면 결국 세상이 바뀔 거란 얘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는 어린이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보고자 교사가 됐어요. 참 꿈이 큰 어린이였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험난하고 거친 세상 탓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콩쥐의 마음을 알 것 같긴 하지만요.
자, 오늘은 이렇게 우리가 교사가 된 이유를 들려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 분들도 오늘 한 번쯤은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더라?' 하는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거창한 이유든, 현실적인 이유든, 오늘 하루치 동기 부여가 가능할 거예요. 그럼 저는 오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내보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