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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츄 Feb 15. 2024

새내기 교사, 세렝게티에 떨어지다.

02. 발령 나흘 차, 욕설을 들었다. 


"아, 왜 지랄이야!" 


 사춘기 특유의 반항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 욕설은 분명 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 화조차 내지 못하고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아이는 책상을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 치더니, 다시 철퍼덕 책상에 엎어졌습니다. 아, 머리가 아득해지던 그 순간의 기분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 사건은 제가 발령 4일 차가 되던 날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도 겨우 2년 차지만,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교사였습니다. 그런 제가 한 '지랄'은 수업 시간 자는 아이를 깨운 것 뿐이었습니다. 이름을 여러 번 불렀으나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일어나있는 분명함에도 꿋꿋히 엎드려 있는 아이의 어깨를 흔들었을 뿐이었죠.


 지금이라면 교권보호위원회니, 학생과 교사간의 예의 문제니 하며 아이를 훈계했을 저지만, 이 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입을 뻥긋했다가는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거든요. 꿈을 이룬지 나흘만에 발생한 이 사건은 한 평생 교사를 꿈꿔왔던 제겐 너무 가혹했습니다. 그제서야 발령 전, 선배 선생님이 걱정스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배츄쌤, 6학년은.. 세렝게티의 초원이야. 마음을 비워." 


 고개를 갸우뚱했던 그 말의 의미가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선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세렝게티 초원 한 가운데에 떨어졌구나. 



 그 후 몇 달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화장실에서, 교무실에서,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취방 침대에서, 울고 또 우는 한 학기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자면 석달 열흘동안 떠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잠깐 교실을 비운 새에 아이들 둘이 주먹다짐을 하지 않나,  3학년 동생에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 학교가 발칵 뒤집어 지질 않나, 전담 수업을 안 가겠다며 교실을 뛰쳐나가질 않나..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학기였죠. 


 저를 향한 반항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무실에서 한참을 울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가며 '아, 내가 왜 교사가 됐을까. 고작 이런 말을 들으려고,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나.' 하며 후회했던 순간은 사실 아직도 가슴 속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참 힘들고, 모진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던가요? 저는 점차 제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점차 제게 적응을 해갔습니다. 내 교실이 세렝게티의 초원이라면, 나는 그 초원을 호령하는 사자가 되자 라는 다짐으로 이를 악문 덕분이었죠. 아이가 욕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배짱을 기르고, 매주 아이들과 학급 회의를 하며 학급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과 레포(신뢰 관계)도 기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노력 끝에, 나의 세렝게티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서는 뭐, 그럭저럭 행복한 한 학기였습니다. 


 제멋대로인 구석도 있지만 제 첫 제자들은 말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제게 욕설을 한 그 아이는 학기 말에 제가 감기에 걸려 콜록대니, "야, 조용히 해! 쌤 아프셔!" 라며 절 도와주더군요. 저를 정말 많이 울리고, 그보다 몇 배는 더 웃게 한 내 아이들. 교직에는 수 많은 단점이 있지만, 이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눈부신 장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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