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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Jul 21. 2021

부자가 되고 싶은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우리에게, 눈물은 필연이다.


밴드 '들국화' 보컬 전인권이 부르는 '제발'


제발 그만해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니,

너도 알잖니.

...

제발, 숨막혀

- 들국화 '제발' 中 -


  전인권의 창법과 목소리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던 때가 있었다. 솔직히 저렇게 꽥꽥거리는(?!) 노래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들국화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깨달았다. 얼마나 들국화의 노래가, 전인권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알싸하게 하는지. 두근거렸다. '와.. 미쳤다.' 경탄이 절로 나왔다. 잘 포장된 이쁜 것보다, 약간은 불편할 정도까지 솔직한 날 것의 존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당신과 내게 밀려들어오는 사회와 문화의 압박대로, 타인이 옳고 그래야 한다고 규정한대로, 세상이 내게 기대하고 바라는대로, 그렇게 인형처럼 웃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이 노래는 새롭게 들리기 시작한다. 착한 학생으로, 성실한 직원으로, 좋은 자식으로, 훌륭한 배우자로, 좋은 부모로 산다는 것. 분명 우리 문화와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좋은' 것들인데, 가끔씩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은, 당신과 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란 무엇일까.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 표준국어대사전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언가에 얽매이지 아니한 상태, 당신과 내가 마음대로 어떤 것이든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는 상태, 그게 바로 자유로운 상태다. 남이 내게 바라는 것 대신, 내가 바라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 얽매이지 않고, 구속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 당신은 자유를 가진 존재인가. 아니면, 자유 대신 구속받고 억압받고 눈치보며 견뎌내는 중인 사람인가.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자유는, 날 가장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힘을 가졌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내 삶과, 부모나 친구, 사회가 바라고 기대하는 내 삶이 서로 다를 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할 용기가 있다면, 당신은 자유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당신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자유는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거창한 건 더더욱 아니다. 자유란 그냥 당신과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걸 의미한다. 어떤가. 당신은 자유로운가.


  당신은 오늘 아침 혹시 일어나면서 잠이 덜 깨서 졸리거나, 한 시간만 더 자고 나서 일어나고 싶진 않았는가.  혹시 그랬다면, 당신은 당신이 하고싶은 대로 다시 꿀맛같은 잠자리에 들었는가. 아니면, 좀 더 자고 싶은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이 내게 원하는대로 물먹은 스펀지같은 두 다리를 이끌고 오전에 들어야 하는 학교수업 출석이나, 회사 출근을 하진 않았는가. 여기가 당신과 나의 현실이 보이는 지점이다. 우리는 가장 생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잠조차,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만큼 자지 못한다. 자유는 거창한 게 아니지만, 그리 쉬운 것도 아니다.


  단순히 잠자는 문제만 이럴까.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 대신 남이 원하는 걸 한다. 초중고등학생들이 왜 학교를 갈까. 그냥 친구들하고 노는 게 더 좋은데. 대학생들이 왜 듣고 싶은 수업 대신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수강신청하려 혈안이 되어있을까. 자기가 학비 내고 자기가 듣고싶은 걸 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통이 심한데 직장 상사에게 아파서 좀 집에 가서 쉬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타이레놀을 한 알 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억울한 상황에서 억울하다 말하지 못하고, 힘들어서 누워서 쉬고 싶은데 눕지 못하고, 그거 하기 싫은데 꾸역꾸역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그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뜻을 다시 한 번 잘 읽어보면, 조금씩 생각지 않았던 당신과 나의 상황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나는, 안타깝게도, 자유롭지 않다.


'돈이 최고'라는 요즘 트렌드도, 결국 자유를 향한 몸짓


  에이브러험 매슬로에 따르면, 모든 욕구는 결국 어떤 다른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우리가 일상 속에서 원하는 것들은 결국에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을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대부분 원하고 바라는 가장 대표적인 대상은 '돈'이다. 돈을 원한다는 것은 결국 무얼 원한다는 말일까. 돈 그 자체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돈 많은 부자의 대표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유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모두 돈을 많이 벌고싶어 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돈을 벌기 위해 더이상 아둥바둥 버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일은 필연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당신에게 누군가가 돈을 주는 이유는, 주는 돈의 값어치 이상으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그를 위해 시간, 에너지, 체력, 감정 따위를 쏟아부어 그를 위해 받는 돈 이상의 큰 이득을 가져다주어야만 한다. 즉, 당신은 당신이 하고싶은 일 대신 그를 위한 일, 결국 그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내 자유를 돈을 주는 이에게 맡기는 일이다. 이 자유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있다. 당신의 시간, 당신의 정신에너지, 당신의 체력 등등. 당신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며 채울 당신의 삶을 그에게 판매하는 대가로 당신은 월급을 받는 중이다. 


  이러니 당신이나 나나 돈을 많이 벌길 바랄 수밖에 없다. 돈을 많이 벌고자 돈을 좇아 다니는 걸 너무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을 원하는 건, 결국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등교, 출근처럼 '남들이 내게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분명 그 하루는 좀 더 청량하고 쾌청할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 가는 대신, 내가 오늘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동을 떠올려보고, 그걸 하면서 하루를 채워나가는거다.




  미국의 서른두번째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In the truest sense, Freedom cannot be bestowed.

It must be achieved.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는 수여될 수 없으며, 쟁취해야 한다.)

- 프랭클린.D.루스벨트 -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우리가 자유롭길 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몇몇 사람을 빼고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은, 사실상 누군가가 당신과 나의 자유를 은혜롭게도 찾아 줄 일은 없을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한다. 어쩌면, 절대 우리의 자유를 쉽게 되돌려주진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슬며시 던져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자유를 얻어야 하고,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마음과 용기로 쟁취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했든, 우리 대다수는 이미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만, 잘 까먹는 것 같다. 당신이 최근 한달 내에 가장 강렬하게 원했던 것을 한 번 떠올려보자. 분명 그건 궁극적으로는 '자유'랑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게 경제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든, 당신의 욕구로부터의 자유든, 타인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든. 내가 궁극적으로 무얼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지, 언제나 날카롭고 선명하게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참을 달린 후에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 무슨 책에서 본 글귀인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글귀를 슬쩍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크게 절망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절망할 때는, 내가 바라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 실제로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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