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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go Jul 03. 2022

코스타리카 따라주, 아침의 생각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는 일요일 일기 

코스타리카 따라주, 난데없이 일요일 아침에 떠올린 단어가 하필이면 '따라주'라는 커피. 

어제 만난 후배, 부친상을 다 끝내고 난 이후에 연락이 와서 만난 대학 후배. 3년 만에 만났지만 늘 그렇듯이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후배 같은 느낌은 없다. 그저 동년배 느낌이랄까. 달리 말하면 그만큼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유대감,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동시대, 특정 구간의 시간과 함께 공유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찾은 마포 공덕의 '일야 커피'를 방문해서 에스프레소 더블샷이 들어간 마키아토를 주문하고 세 번에 나누어서 마셨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좋아하는 커피 중에 하나가 '따라주'이다. 


3대 커피라는 타이틀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알고서 주문할 줄 알고 커피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어서 만족감을 느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 때는 와이너리의 이름을 외우고 좋은 곳을 찾고 퍼스트, 세컨드를 따지며 마시던 나름 와인 중독자이기도 했고 와인을 마시면서 즉흥적으로 느껴지는 맛, 내 느낌을 뱉어내면서 감상적으로 즐기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고급 와인도 좋고 이른바 '프리미엄급'와인 이외에도 젊은 녀석들 중에서도 잠재력을 보이는 와인을 찾는 재미가 더 쏠쏠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버는 돈을 감안하고 마시게 되었다. 물론 현재는 내 상황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보니 와인을 잘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주를 싫어하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라 하겠다. 


따라주는 내가 보기에 향이 좋고 단맛, 쓴맛, 바디감이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커피라고 생각한다. 물론 따라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풍부한 과실 맛이랄까. 꽃을 떠올리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에 여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커피의 맛이라고 평한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날, 마시기 좋은 커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묵직한 바디감을 선호하고 쓴맛을 우선으로 좋아하는 이라면 '따라주'를 좋아할 수는 없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커피든 와인이든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르다는 사실이.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가 서로 다른 것처럼. 하지만  언제나 나는 각각의 커피가 보여주는 정체성을 존중한다. 그래서 더 이상 커피를 따지지 않는다. 커피를 볶는 사람의 실력과 취향에 따라 중배전이 될 수도 있고 강배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음식을 먹더라도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음식의 맛을 외식을 할 때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 가게의 특유의 맛이 무엇인지, 어떤 개성을 갖고서 만들려고 했는지 스타일이나 의도를 가늠해 보려는 게 내가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커피 애호가들은 따라주가 무난한 커피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특별한 맛을 지닌 커피에 속한다. 와인으로 따진다면 단일 품종인 '피노누아'와 조금 더 실키한 와인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따라주는 실키함은 적은 편에 속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조금은 오래된 피노누아라고 생각하고 달리 표현하자면, 장기숙성형 피노누아라고 판단한다. 


좋은 커피에 좋은 사람과의 수다는 오래된 추억을 이끄는데 일품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감이 사라지면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양질의 대화를 가질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한다. 6월 세상을 떠난 내 부친을 아는 후배는 나를 위로하면서 간혹 울컥하기도 했다. 아마도 같은 학교에서 내 아버지를 상대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추억은 방울처럼 만들어졌다가도 한 순간 사라지기도 하는 신묘한 존재가 아닐까 한다. 


부친 이야기, 나의 근황, 언젠가 닥칠 은퇴의 순간들, 서로의 각오를 나누었다. 오후 1시경에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까 5시가 넘었고 나는 저녁에 재활 일정이 잡혀 있어서 곧 일어났다. 재활을 열심히 하고 약간의 고민이 있었던 일에 대해서 SNS 친구분에게 도움을 청해서 다른 의견을 듣게 되었고 매우 큰 도움을 받았다. 


대화라는 것은 참 실용적이다. 언어의 순기능이라든가 커뮤니케이션의 이득이라는 관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대화는, 알 찬 대화는 실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와 다른 상대의 관점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상대가 그런 의도가 있어서도 그렇고 아니어도 그렇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각자 다른 의견,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제 수다를 통해서 배운 것은 비싸게 굴어라, 즉 품위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품위라는 것은 나의 격을 떨어트리지 말라는 의미였으며 의미부여의 경우는 내 개인의 감정에만  빠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음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적어도 7월부터 나는 이전과는 다른 행동의 기준을 갖고 지내게 될 것이다. 


7월은 여전히 바쁠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학원을 등록을 했기 때문에 다녀 볼 예정이다. 얼떨결에 시작된 인테리어 디자인, 필기는 합격을 했으니 내친김에 따버리자는 게 현재 내 생각이다. 혹시 모른다. 인생은 필연적이 요소 보다도 우연한 기회로 인해서 확장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이 지상파의 계약직이 되고 케이블 방송사 공채 피디로 입사를 하게 된 것도 광고공모전을 하면서 만든 시나리오 덕분에 기회를 가졌다. 이렇듯 인생은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다. 


어쩌면 실내 인테리어 도전을 하면서 내 안에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브랜드가 되면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더 안정적이고 수입 측면에서도 더 유리한 점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 내가 가늠을 할 수 있다. 내가 이 일에 잘 맞는지 아닌지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주 커피를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내 의식의 방향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그런 일기 같은 내용이다. 살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서 남기는 행위는 매우 고귀한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고 이런 글을 쓰면서 어제 남은, 오늘 말하게 될, 속에 쌓이게 될 어떤 욕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나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7월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잠시 누워 쉬다가 간단한 책 잠시 읽다가 평화로운 일요일을 만끽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오늘도 행복하길 바라며, 주말이니까 피로했던 한 주를 되돌아보고 정리를 하시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러한 평온한 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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