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생은 뭘까?
굉장히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가 있었다. 직장에서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야근택시에 환자처럼 실려왔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은 유독 되는 일이 없었다 실타래가 꼬였는데 그 꼬인 실타래를 풀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일은 생각보다 주변의 호응을 얻지 못해 흐지부지 됐다. 소개팅을 했던 여자와 연락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맞지 않는 관심사와 크지 않은 관심으로 서로 무성의한 메시지만 주고 받았다. 하루가 재미가 없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이런날 반갑게 고생했다며 인사를 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엄마 옆에 모래주머니처럼 달고 다닌 온하루의 짐을 내려놓듯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참을수 없는 기침처럼 이런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인생은 뭘까?”
하지만 엄마는 나의 갑작스러운 철학적 질문에 놀라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티비에 고정된 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인생은 행복한 것, 놀다 가는 거야”
굉장히 뻔한 대답이라 흘려 넘길 수 있는 대답이지만, 엄마의 담담한 어조에서 나온 대답이 뭔가 새롭게 느껴졌다. 인생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 자체를 그저 행복으로 정의한다면 내가 살면서 느끼는 허탈과 좌절도 다 행복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에 대해 표현 할때 “맛있다.” 라고 표현한다. 각 음식이 가진 매력과 맛이 서로 다르지만 결국 맛있다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떡볶이는 매콤한, 달콤함, 쫄깃함이 만나 맛있음이 될 것이고, 나물 무침은 신맛, 단맛, 쓴맛 그리고 아삭함이 만나 결국은 맛있음이 된다.
결국은 내가 느끼는 좌절도 허탈함도 내 인생이 맛있어 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오늘하루가 의미 있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나의 이 감정을 의도하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담담한 어조로 건넨 한마디가 오늘 내 인생을 참 맛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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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였다고 한다.
내 인생아 인생이란 놀다가는 것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사는 재미야 걱정하며 살지 말자
뒤돌아보면 얻은 게 더 많았던 이 얼마나 고마운 세월인가
꽃바람/ 한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