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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솔레미욤 Jun 29. 2021

세상 참, 녹록지 않다.

새벽 세 시.

전화 진동에 눈을 떠 보니 엄마다.

예감이 좋지 않다.


전화를 받자, 역시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솔아… 아빠가…”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침착하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아빠가 자는데 제세동기 쇼크가 와서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고 있고, 아직 의식이 없다고 했다.


다니던 삼성 병원 응급실에 가려했는데, 삼성병원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해서, 여기저기 전화해보다가 순천향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삼성병원 응급실에 전화해서 과거의 이력(순천향 병원에서 삼성 병원으로 헬기로 전원)과 제세동기를 삽입한 곳이 삼성 병원었던 현재 상황 설명을 드렸더니, 와서 대기를 해야 하는 건 알고 계시라며, 그래도 괜찮다면 오라고 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그사이 아빠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하길래, 삼성병원으로 가 달라 요청했다.

119 구급대원은 “가서 대기를 하라고요?”라고 하셨지만, 나의 간곡한 청에 “가는 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대기하다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처치를 못해요. 이건 알고 계세요. 근데 보호자님께서 가자고 하니까 가는 거예요”라고 하셨다.


오는 도중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서웠고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서웠다.

그런데, 과거에도 순천향에 입원했다가 에크모를 달고 헬기를 타고 전원 했던 경험이 있기에, 의식이 있다면 삼성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오가는 도중 문제가 생기는 것도 문제고 응급실 대기도 문제지만, 경기도 119차가 서울의 병원까지 가게 되는 게 걱정이었다.

경기도 119차가 서울까지 오게 될 경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아빠를 서울에 모셔다 드리고 가는 사이, 다른 누군가에게 위급 사항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른 지역 병원에 가달라고 하는 건 안 되는 것 같았다.


근데 이번만큼은 예의를 차릴 수 없었다.


제가 다른 건 떼 안 쓰잖아요.

쓰레기 분리수거도 잘하고, 지구에 좋다는 활동도 하고, 헌혈도 하고, 기부도 하고, 심지어 지하철에 탈 때 사람들이 내리면 타는 사소한 공중도덕까지 잘 지키니까

이번에만 욕심부리고 이기적여볼게요.

그런 생각이었다.


내가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로 가자, 대기 환자 7명이 적혀 있었다.

허겁지겁 응급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아빠가 탄 119 차가 왔다.


우선 119 대원한테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병원에서 아빠의 상황을 묻고 아빠를 보더니 응급실로 데려가셨다.

응급실인 줄 알았는데, 소생실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 무서워서, 소생실이 어떤 곳인지 찾아봤더니, 이름만큼 위급 환자들을 돌보는 곳이었다.


아빠를 소생실로 보내고 나니, 엄마가 그제야 나를 안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이 지나자, 응급실에서 보호자인 엄마를 호출했고, 엄마는 아빠와 함께 있다.


나는 밖에서 아빠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엄마와 밖에서 1~2시간을 함께 서성이며 기다리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게 썩 행복하기만 할 순 없는 것 같다고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견디기 벅찬 시련들이 온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30살 먹을 때까지, 이런 시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어릴 때 겪었다면, 멘탈 관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그리고 이렇게 의료진이 부족한데, 내가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물론 공부를 못해서 안 되겠지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119에 엠뷸런스를 추가시켜주고 싶다


세상 참,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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