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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솔레미욤 Sep 21. 2020

코로나에 걸려 죽기 전에, 죽겠네

코로나에 걸려 죽기 전에,
보살핌을 받아야 할 생명은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막막해서,
그렇게 우울증과 배고픔과 어려움에 시달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요즘.


국가 간의 교류를 통제하고, 도시 간의 이동을 통제하고, 국민들의 행동을 통제하면 코로나의 전파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교류와 이동 규제로 인한 경제 파탄과 이외의 문제는 어찌할 생각인가.


경제 파탄과 인권과 자유를 논하며, 이동과 행동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의료시설 마비를 초례할 것이며, 이는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병원 내의 전파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 엄청난 희생을 초래할 것이다.


의료시설이 마비되지 않을 정도로만 이동과 행동을 규제 통제하며, 약이 개발되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지금처럼.

현재의 방역 방법 이외에,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

모를 만큼, 지금으로선 현재의 방역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다만, 코인 노래방이나 PC방, 항공업 등 코로나로 인한 국가의 규제로 인해 경제 활동에 직격타를 맞은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아무 보상 없이 너네가 희생 좀 해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사람으로서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나만 죽이는 건 억울하지 않겠나.

게다가 죽음으로 내몰기만 할 뿐, 이후에 구해줄 것도 아니지 않나.


결혼을 준비하는 2020년 신부로써, 한 번의 이벤트인 결혼식에 있을 지금의 희생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이들에겐, 문제가 다르다고 본다.


재난 지원금은,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인인 내게 줄 것이 아니라,

국가의 규제와 희생의 강요로 고통받는 이들이 받아야 한다.

(물론 주니까 받긴 했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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