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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솔레미욤 Sep 17. 2020

바보인지 바보인 척 하는 것인지는 역사가 말해주겠지

태양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이유 중 하나로,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강화를 위한 빅 피쳐를 들곤 한다.
왕정 체제에 저항한 지방 분권 대귀족들의 난으로 인해 굴욕을 경험했던 루이 14세는
지방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베르사유 궁전을 화려하게 꾸민 후, 매일매일 연회를 베풀며 그들을 궁전 안에 살게 함으로써 귀족들이 자신의 지방에 끼치는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그렇게 루이 14세는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절대주의적 정책을 강화하였다.

많은 역사 학자들이 그렇다고 말하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베르사유 궁전이 정말 루이 14세의 빅 피쳐였던 것 같지만
사실, 루이 14세가 본인 입으로 "내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이유는 왕권 강화를 이끌기 위함이었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얻어걸린 건지 뭔지 알 수 없지 않나 싶다.

가끔 보면, 정치가 그렇다.
배울만큼 배운 똑똑한 정치인들이, 어찌 저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까?

혹시 사실은 똑똑한데, 바보처럼 행동함으로써 내가 예상하지 못한 걸 얻고자 하는 건 아닐까?

지적인 이미지를 버리는 대신,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함 아닐까?

본인 진영의 승리를 위한 희생 아닐까?


그렇다면 이게 정녕 정치고 고수지 싶다.

사실은 똑똑한 데, 바보인 척 무시당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내는 것.
하수인 나는, 우선적으로 멍청한 이미지이고 싶지 않기에, ‘내가 이만큼 많이 생각했어’라고 떠들고 싶어 안달이지만,

정치적 고수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이는 비단 정치뿐이겠나. 회사 생활도 그렇다.
상대의 답답하고 멍청한 행동에, 답답하고 화가 난 내가, 일을 알아서 처리하며

이게 다 내게 일을 넘기려는 그의 빅 피쳐는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빅피쳐임을 알더라도, 나 또한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내가 처리해야한다.

그러고 보니, 멍청함 또한 엄청난 용기 아닐까 싶네.

 


역사적으로, 그의 끝이 성공적이었다면, 흥선대원군이나 루이 14세처럼, 후대 후손들이 그의 행동을 잘 포장하여 줄 것이고
역사적으로, 그의 끝이 실패라면, 제아무리 바보인 척을 했더라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때 와서 ‘사실은...’하기엔 이미 늦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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