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토대장정 (2008)
2. 제주도 하이킹 (2009)
3. 마라톤 완주(2008,2009)
4. 한강 다리 라이딩 (2009)
5. 100개의 산 등반
6. 1년에 100권 돌파 (2009)
7. 특전사 체험 (2009)
8. 스킨스쿠버 다이빙 & 자격증 (2010)
9. 이탈리아 건축탐방 (2012)
10. 헌혈 금장 (49/50)
11. 미국 센트럴파크(2017)
12. 인도 배낭여행
13. 태국 카오산로드(2014)
14. 크리스마스 봉사활동 (2009)
15. 해외 봉사활동 (2011)
16. 기차 전국 여행(2010,2012)
17. 대학생 기자단 (2010,2011)
18. 이집트 피라미드
19. 진심 어린 카운슬링(ing)
20. 전국 무전여행
21. 백두대간 종주
22. 허솔 티 만들기(2010)
23. 독도 탐방
24. 제주도 올레길 탐방(2011)
25. 프랑스 에펠탑 보기 (2012)
26. 스페인 가우디 건축 탐방 (2012)
27. 1004 역사서 편찬-> 달력으로 대체 (2013)
28. 산에서 농사지으며 자급자족 생활
29. 외국에서 한복 입기 (2019)
30. 울릉도 탐방 (2013)
31. 스마트폰 유저(2011)
32. 소규모 허솔 복지 재단 설립 ->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기
33. 전국 자동차 여행(2020)
34. 제주도 자동차 여행(2015)
35. 20대에 10개국 여행하기(2015)
36. '젊다는 것만으로도 넌 충분히 아름답다' 출판
37. 34세에 5개 국어 구사
38. 프랑스 여행 한 번 더(2015)
39. 서른 전에 남미 배낭여행
40. <프랑스에 취하다> 출판 <청춘 여행스케치> 출판 (2018)
41. 캄보디아 천년의 역사 앙코르와트(2018)
42. 대만 맛 집 탐방(2014)
43.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2020)
44. 집안에 1평짜리 커피숍 설계.
45.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2019)
46. 나만의 뮤직비디오 만들기
47. 호주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48. 영어로 외국인을 인터뷰하기
49. 몽골의 대자연과 만나기 (2018)
50.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기
51. 터키에 하늘을 날아보기(2015)
52. 없는 재능이라도 만들어서 재능 기부
53. 직장인의 10개국 배낭여행(2017)
54. 한 손으로 운전하는 베스트 드라이버
55. 9첩 반상 요리왕
56. 내가 찍은 사진으로 엽서 만들기(2016)
57. 아이유 단독 콘서트 가기(2015)
58. 아빠가 김연아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기
59. 아빠의 꿈 귀농, 엄마의 꿈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이룰 수 있게 돕기
60. 한국사, 한국어, 한자 3단 콤보
61.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2016)
62. 독립(2017)
63. 친근한 상담사
64. 진심을 담은 강연가
65. 인세로 오빠와 새언니에게 해외여행을 선물하기(2018)
66. 노희경 작가 만나서, 노희경 작가 책에 사인받기
67.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
68. 아프리카 대자연에서 수많은 동물과 만나기
69. 1년동안 안식년 갖기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을때면, 항상 같은 대답을 했었다.
“당신의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솔이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렇다면 나는 그의 꿈을 이루어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허솔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비슷하여 대화가 통하고, 대화에 있어 선을 넘지 않으며,
무작정 선하지 않아 답답하지 않고, 그렇다고 악하지 않아 마음이 놓이는 사람.
정직하고 예의가 바라 믿음이 가고, 명석하고 꼼꼼해서 의지가 되는 사람.
혹시나 내가 틀린 길을 가게 되면 나를 바로잡아 주고
혹시나 그가 틀린 길을 가게 되어 내가 조언을 하면, 나의 의견에 존중해 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게 완벽한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재수 없어서) 절대 만나지 않을 테니까.
달라야 할 부분은 다르고, 같아야 할 부분은 같은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인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은, 세상에서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이다.
운이 좋고 즐거운 일이 많았던 20대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삶에 할당된 행복이 있다면, 나의 모든 행복은 20대에 소진되어 30대부턴 불행할 거라고.
그리고 분명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라고.
뭐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20대를 보냈었는데, 결혼 후 다시금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분명, 전생에 나라를 세 번쯤 구한 영웅이었을 거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운이 좋았던 내 삶에 또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이다.
쉬는 날, 쓰레기 분리수거와 대청소를 끝내 놓은 후, 내가 좋아할 음식을 준비해 놓고는
도어록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현관으로 마중 나와, 반기는 그의 얼굴과 마주할때면
'와우! 어쩌다가 이런 남자가 나한테 장가왔을까?' 싶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내일은 뭐 마실 거야?”라고 물어본 후,
2시간이나 더 자도 되지만, 함께 일어나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아준다.
그리곤 그의 마중을 받고 출근길에 올라 엘리베이터에 탄 후, 텀블러를 볼 때면,
'와우! 어쩌다가 이런 남자가 나한테 장가왔을까?' 싶다.
이외에도 다정하고 귀엽고 고마운 순간들과 마주할 때 마다,
'와우! 어쩌다가 이런 남자가 나한테 장가왔을까?' 싶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할 줄 모르던 내가, 힘들 때 안겨 울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다.
작년 4월, 아빠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었다. 그리고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심장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빠의 다리를 주무르며, 병원으로 향하던 구급차 안.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몸에 열이 나서, 아빠 혼자 응급실에 들여보내 놓고는, 열이 떨어질 때까지 병원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
응급실 안에서 심정지가 왔다며, 빨리 수술해야 하니 동의서를 작성해달라고 달려온 의사의 표정.
수술 후 중환자실 앞에서 가족들을 기다릴 때, 중환자실 너머로 들려온 두 번의 '코드 블루' 안내 방송
좋아지는 줄 알고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터진 뇌출혈의 상황을 유선으로 전달하며 떨리던 엄마의 음성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나 홀로 병원에서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며, '이거 꿈이지?' 생각했다.
가볍게 시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급박하게 악화되는 상황을 나 홀로 맨몸으로 마주하며, '이게 정말 현실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생각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다, 현실임을 깨닫고는 좌절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당시, 코로나로 면회 인원 한 명으로 제한된 중환자실이었으나, 우리 가족은 모두 면회를 시켜줬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과 함께.
그 힘든 순간에도 아빠는, 특유의 개구진 얼굴로 "아빠 믿지? 아빠 네 손잡고 들어갈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고, 이후 신랑의 손을 잡고는 그에게 나를 부탁했다.
구급차에서 아빠의 다리를 주무를 때에도, 응급실 앞에서 시술 동의 사인을 할 때에도, 시술 후 의사의 소견을 들을 때에도, 가족과 친척들한테 연락을 돌릴 때에도, 전원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볼 때에도, 맘 놓고 울지 못했다.
그러다 신랑 얼굴을 보는 순간, 무너져내렸다.
괜찮을 거라고, 가족과 친척들을 다독이던 내가, 신랑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때, 내가 마음 놓고 엉엉 울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던 엄마였다.
그때, 사랑하는 막내딸을 부탁할 사람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놓인다던 아빠였다.
나중에 아빠가 말했다.
삶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었지만, 결혼식장에 막내딸 손잡고 입장시키지 못할까 봐,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려, 그 하나만 생각하고 버티셨다고.
아빠는 3개월 후, 기적적으로 퇴원하셨고, 나의 결혼식에서 축주를 해주었다.
분명 내가 연습하라고 매번 잔소리를 했으나, 말로만 알겠다고 하고는 연습을 안 하더니,
결혼식 전 날 전화해서는 "솔아, 아빠 연습 안 했는데 그냥 축주 안 하면 안 되니?"라고 물어서,
"안돼, 일 절이라도 해"라고 해서, 연주한 곡이다.
연습을 하나도 안 했다던 아빠가, 연주를 생각 보다 잘하는 바람에 나는 울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모두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찍힌 사진마다 울고 있던 우리 엄마는, 아빠가 색소폰 불 때 (신부 어머니 체통을 잊고) 핸드폰을 꺼내어 동영상을 찍었다.
그의 장점을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의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살다 보면 맞지 않는 부분과 오해와 서운함으로 다투거나 토라지는 일들이 발생하겠지 싶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쓴 이 글을 꺼내어 읽어보려 한다.
내가 의지했고 위로받았던 지난날을
부모님이 안심할 만큼 좋은 사람이라 감사했던 지난날을
다정했고, 고마웠던 많은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