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판타지 같은 현실의 이야기

by jomjung

[영화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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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는 한 여성이 차를 타고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BGM도 없이 차 소리와 빗소리만이 들리고, 한참을 가던 여자는 총을 들고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는 분노한 표정으로 들판에 서있던 당나귀를 죽인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첫 장면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노한 표정으로 동물을 죽이는 여자의 모습에서, 그 당나귀가 과거에 알았던, 지금은 동물로 변한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나, 줄거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먼저 보여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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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 랍스터'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런 상황이 오면 랍스터가 되길 원한다. 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랍스터는 100년 가까이 살고, 무한히 생식할 수 있고, 귀족처럼 푸른 피를 가졌다고 설명한다.

데이비드는 호텔에서도, 숲에서도 초반에는 정해진 시스템을 반감 없이 따르는 듯 보인다. 반면 호텔에서 주어진 45일 중 7일이 남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커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코피 흘리는 여자, 비스킷을 좋아하는 여자, 금발 여자 등과 교류는 있었지만, 그는 공통점을 찾는다거나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심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를 치던 그는 문득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생각한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각 뒤에 "그는 비정한 여자의 말투와 짧은 머리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이 여자'라고 결론 내렸다."

3.
다시 그가 랍스터를 선택한 이유로 돌아가 보면, 귀족처럼 고고하고 도도하게, 사랑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무한히 생식할 수 있는 랍스터를 부러워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커플이 되기 위해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면서까지 노력하는 주변 사람들보다 오히려 주변 상황에 무관심한 여자에게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런 무관심함이 도도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감정을 감추는 정도는 그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데이비드는 비정한 여자와 커플이 되었지만, 형의 죽음 앞에서 끝까지 연기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고고한 것과 무자비한 것은 달랐기에 결국 그는 끝까지 인내할 수 없었다.

사회의 시스템에 100% 순응하는 사람이었다면 공통점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지켜서 커플 관계를 유지했어야만 한다. 자신이 괴롭고 아프더라도, 계속해서 코피를 냈던 남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큰 괴로움을 감당하기에는, 그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거나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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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물컵을 비우고, 다시 채우며 남자를 기다리는 근시 여인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과연 데이비드는 눈을 찔렀을까? 찌르지 못하고 떠났을까? 결론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으로 유추해봤 때, 그는 결국 눈을 못 찌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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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 이야기]

영화에서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이렇게 정해진 시스템을 따라야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판타지로 보일 정도로 비현실적이지만, 그런 과장된 상황 속에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됐다고 생각한다.

1.
영화에서 커플이 되기 위해서는 공통점이 있어야만 한다. 절름발이, 근시, 코피 등 비슷한 점이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 데이비드 역시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와준 근시 여인을 처음 만나지만 호감을 갖게 된 계기는 그녀가 근시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그 이후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영화 속에서 커플이 되는 것은 과연 진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커플이 된다는 것은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기계적으로 공통점을 찾고, 커플이 되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위한 시스템일까? 정해진 시스템으로 흘러가다 보니,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영화를 벗어나서, 현실의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도 먼저 조건을 궁금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타인에게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인정받는다. 생활수준, 학력, 외모 등 타인에게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받는 순간,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 자체가 아닌 조건을 보고 만났을 때 행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인식이 지속되는 것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을 '진짜 행복'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시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45일 만에 커플이 돼야만 하는 영화 속 세상과 결혼할 시기가 되어 결혼을 해야만 하는 현시대는 모두 사랑을 강요한다. 하지만 강요로 사랑을 찾을 수는 없다. 노력으로도 사랑을 찾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 역시, 사랑이 진짜 감정이 아닌,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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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은 사회가 정해 놓은 시스템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정해진 흐름에 맞춰서 교육을 받고, 대학에 가고,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하고, 적정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고 평가된다. 이렇게 시스템 속에서 의구심이나 반감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지금의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기에, 기득권 층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정치, 사회, 교육 등 여러 분야에 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간다.

호텔에서는 반드시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성애자이거나 동성애자만 허용되며 양성애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신발 사이즈 역시 44 반은 없다. 영화는 중간을, 다양성을, 정해진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커플이 되어야만 하는 정해진 시스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 호텔로 갔고, 호텔에서도 정해진 규칙을 어겼기에 도망쳐서 숲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유예 기간 없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도 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숲 역시 자유롭지는 않다. 그곳만의 규칙이 정해져 있고, 어길 시에는 잔인한 처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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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들이 있었음에도 '더 랍스터'는 사랑을 말하는 영화처럼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의심도, 반감도 없이 사회의 시스템에 맞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나의 행복이 아닌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삶,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정해진 시스템에 맞춰 살면 편하다. 머리로는 시스템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정해진 시스템, 사회적 인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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