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부터 스톰운운하며 예보가 심상치 않더니 월요일부터 삼일연속 배가 내리는 중이다.
월요일에는 캘리로 온 후 처음 겪는 심한 번개와 천둥의 밤을 보내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3학년인데도 아직 내 옆에서 팔을 끼고 누워야 잠이 잘 온다는 둘째의 잠든 얼굴 위로 시도 때도 없이 번개가 조명이 되어 번쩍거렸다. 어김없이 이삼 초 후 따라오는 천둥소리까지 세트로 겪으니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얼마 간격으로 쳐대는지 세느라 잠이 다 달아났다. 이게 무슨 일이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난데없는 폭우에 당황한다. 그동안 못 와서 심술부리듯 지붕을 연타로 때려대는 빗소리가 안 그래도 조용한 캘리의 밤을 단번에 휘저어 버리는 듯했다. 급작스럽게 시끄러워진 밤이 생소한 것인지 아니면 비가 이렇게 많인 온다는 사실일 놀라운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매년 겪는 장마와 침수소식에 익숙하던 나인데 어느새 이렇게 변한 것인지. 비 한 번 온다고 이렇게 밤새 잠을 설치다니.
비보다는 가뭄이 훨씬 친한 캘리라 그런지 이렇게 비가 쏟아붓는 날이면 상습침수지역은 그야말로 유아풀장이 되기 일쑤다. 메마른 땅은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고 배수가 철저하지 않은 캘리의 건축물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는다. 매년 장마를 겪는 한국 사람이 알고 있는 기본 상식-예를 들어 나무와 산이 많은 지역이 조금 더 안전하다던가 산사태를 조심한다던가 하는-은 조금은 전문적인 지식이 되어버리는 게 이곳 캘리의 특징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애틀이나 동부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캘리사람들을 조롱할때가 바로 이때다. 비라면 지긋지긋한 한국인이 바라보기에도 이곳의 호우대응은 무언가 어설퍼보이는 면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퍼부은 다음날 스튜디오는 어딘가가 물이 샌다며 수업이 몇 시간 동안 캔슬되고 곳곳에 임시방편 급하게 막아놓은 걸레들이 보였다. 다음 날 가족들에게 잘 잤냐고 물으니 번개는커녕 꿀잠만 잤다며 졸지에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비가 그친 아침, 창밖의 햇살이 아무렇지 않게 쏟아지는데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흐릿하다. 어제 밤 번개와 천둥에 온몸이 긴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커피를 들고 부엌을 오가며 나는 자꾸 팔을 끌어 안는다. 한국에서 겪었던 장마와 태풍은 익숙했지만, 이 낯선 땅에서의 비는 내 마음을 더 크게 흔든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던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인 줄 몰랐다는 걸 깨닫는다.
몇 달 전 여름,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를 떠올린다. 찌는 듯한 열기와 습기에 숨이 막히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땀이 옷깃을 적시던 날들. 그때 나는 그 더위 속에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아침에 기상할때부터 코를 업습하는 습기, 더위에 한복입고 경복궁을 구경한 지 10분도 안되서 한복반납하러 가던 우리. 하지만 그런 힘겨움 속에서도 나는 길가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 시장에서 퍼지는 과일 향, 익숙한 거리 풍경에 마음이 조금씩 풀렸더랬다. 유난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친정엄마와 나만 졸지에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렸던 그 느낌.
결국 나는 깨닫는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하지만, 동시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을 멈추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캘리의 갑작스러운 폭우에 밤새 잠을 설치고, 한국의 찌는 여름에 땀과 습기에 숨이 막혀 몸을 구부리던 내 모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 속에서도 시장의 활기와 그리웠던 분식 냄새며 친정엄마의 유난스러운 눈길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적응과 불평 사이를 오가며 흔들리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감각이 아닐까. 사람은 언제나 환경 속에서 배우고, 투정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