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을 가득 채운 책장, 아늑하게 둘러싼 사유의 공간.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챙겨 온 잡지를 꺼냈다. 잡지를 읽다 광희동 산책코스가 나와서 마침 DDP까지 왔으니 이곳을 좀 더 탐방하자는 즉흥 계획을 세웠다.
역시 건축투어만큼 흥미로운 게 있을까! 실외 공간부터 DDP 대표적 공간인 디자인랩과 뮤지엄 공간을 투어 해보기로 했다. 건축물 전체가 창문이 없는 알루미늄으로 되어있어 그저 디자인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디테일을 알고 나니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다르게 보였다.
건물 전체가 빈 공간 하나 없는 알루미늄 패널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이 뚫린 435장의 태양광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이 타공패널이 건물의 채광 역할을 하며 각각의 패널이 가진 곡률의 정도와 고유 코드도 모두 다르다. 감탄스러운 부분은 국내 기업이 전문 기술 장비를 개발하여 1년 6개월 만에 패널 제작을 완료했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에서는 최소 수십 년이 걸리는 난도가 높은 작업이라고 한다.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가 봤다. 지붕 위에 깔린 푸릇한 잔디인 세덤(Sedum)은 냉방 및 보온 효과를 위한 장치라고 한다. 옆으로 이어진 잔디 언덕은 각종 행사가 개최되는 역할도 한다. 대표적으로 매년 두 차례 서울 패션 위크가 열리는데, 언덕 위를 멋지게 내려오는 모델의 모습을 상상하니 관심 없었던 패션 행사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DDP 건축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디자인 둘레길'이었다. 건물 4층에서 지하 2층으로 쭉 이어진 길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길의 폭은 넓어지고 층고는 높아짐을 알 수 있다. 둘레길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을 관통하여 이어진다. 둘레길 곳곳에 다양한 전시 갤러리를 개최하고 있으며, 벽면과 바닥에 설치된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3층은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어 '시크릿 공간'으로 불린다는 점도 재미 요소였다.
공간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할수록 감탄을 터뜨리게 되는 요즘이다. DDP 내부 전시 공간인 '매거진라이브러리' 건물 전체를 탐방하게 된 것은 다채로운 건축물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운 곳보다 익숙하게 알고 지내왔던 공간과 건축물에 대한 기억이 쌓이는 것은 더없는 소중함이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나를 닮은 아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기억은 더 짙게 쌓여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