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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빈 Aug 30. 2024

'일'은 타인이다.

영화 <디베르티멘토>

내가 기억하는 첫 팀워크는 고등학교 2학년 무용 과목 수행평가 때다. 당시 과제에 대한 열정으로 무용 음악과 의상 컨셉을 팀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그런데 열심히 하고 싶었던 나의 의도가 다른 친구에게는 제안보다는 강요의 느낌으로 전달되었다. 당황스럽고 불편해하던 그 친구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인생 첫 팀워크의 기억은 불협화음 자체였다. 학교 밖에서도 어김없이 팀워크의 순간은 찾아왔다. 실수를 밑거름 삼아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성장했지만, 누군가와 협력하고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일은 매번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영화 <디베르티멘토는>은 음악을 다루는 장르지만 내게는 일과 팀워크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주인공 자히아는 어릴 때부터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파리의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전학한 그녀는 인생 첫 장벽을 만나게 된다. ‘나이가 어린 여성’, ‘프랑스 변두리의 이민자 가정 출신’. 그녀는 전학한 학교 친구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전학생일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음악 수업의 지휘를 맡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넘쳤던 주인공이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차별과 조롱 섞인 타인들의 말이었다.


그런데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주인공의 유일한 목표이자 ‘일’이었다. 반면 단원들로부터 멋진 연주를 끌어내는 것은 ‘팀워크’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지휘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마침내 자신만의 오케스트라 팀 ‘디베르티멘토’를 결성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녀는 항상 외롭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오랜 시간 준비한 지휘자 대회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깊은 슬럼프에 빠진 그녀를 밖으로 이끈 것은 공원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악 연주 소리였다. 그럴듯한 무대도, 악보를 놓을 보면대도 없는 넓은 공원에서 지휘봉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히아가 전학 간 첫날, 일부러 불협화음 소리를 내며 그녀의 지휘를 방해하던 ‘타인’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그녀의 노력이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달랐던 단원들의 화합을 끌어낸 것이다. 자유로운 악장 구성을 의미하는 ‘디베르티멘토’로 오케스트라 팀의 이름을 정했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이 살아갈 방식을 정했을지도 모른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음악 안에서 행복할 것’.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음악의 즐거움을 나누던 순간 그녀의 몸짓은 자유로웠고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타인’ 때문에 좌절하던 순간도 많았지만 일의 의미를 되찾아 준 것도 역시 ‘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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