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일은 된다 (마이클 A. 싱어, 정신세계사)
추석 연휴가 지나고 어느새 시월이 되니 정말 덥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그렇게 더웠는데 이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금세 옷을 여민다. 이런 날씨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주변에서 목격하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무척 부자연스럽고 내 맘 같지 않다. 이번 추석에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나의 준비와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기대와는 달리 나를 섭섭하게 하는 일은 어김없이 일어난다.
이럴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세상은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그러니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 이제 그만해.
이 말은 각자가 원하는 것은 꼭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의 행동 원인을 찾을 때 의식(마음)을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아주 이성적이고 마인드 컨트롤이 빼어나 내 주변 환경은 나의 의지와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누구도 의식적으로 이성과 감정이 구분하여 사용하지는 않는다. 뇌의 좌우 기능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는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때로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한쪽이 우세하게 작동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의지를 동원해서 결론을 내리고 그 기대를 완수할 수 있도록 열정과 노력을 동원한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은 현실 환경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될 일은 된다'의 저자 마이클 싱어 이러한 상황을 전쟁에 비유한다.
내 의지대로 가는 길과 나의 개입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벌어졌을 일 사이에서 펼쳐지는 현실 간의 이 싸움은 결국 우리의 삶을 좀 먹는다. 전쟁에서 이기면 행복하고 느긋해지는 반면, 지면 마음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개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맞아떨어질 때만 기분이 좋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부단히 몸부림친다. (15page)
미국의 명상가인 마이클 A. 싱어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매번 휘둘리는 것 대신 자유의지로써 삶의 흐름에 뛰어드는 자신만의 시도를 하였고 그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는 이 시도를 내맡기기 실험(surrender experiment)이라고 부르고 40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기록하였다. 그래서인지 서두에 이 책의 진짜 저자는 자신이 아니라 삶이라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내맡기기 실험을 무기력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흔히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을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무기력한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맡기기 실험은 큰 자유의지가 동원되는 실험이다.
그래서 누구나 과연 그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내맡기기란 의지 없이 넋 놓고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40년에 걸친 나의 이야기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삶이 펼쳐내는 일들을 안내자로 삼아 내 의지를 발휘했을 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변에서 자연스레 펼쳐지는 힘에 자신의 의지를 동조시켰을 때 깜짝 놀랄 만큼 강력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다.(17page)
마이클 A. 싱어의 내맡기기 실험의 시작점은 아주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히 자신의 마음에서 들리는 생각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메타 인지 능력과 상통한다. 그러나 그는 심리학에서는 원하는 답을 구하지 못했다. 프로이트의 저작들을 열심히 읽었지만 마음속의 목소리를 자각한 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선불교의 명상으로 연결되었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삶의 의지였는지 친구가 우연히 빌려준 필립 카플로의 선의 세 기둥이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 마음의 배후에 있는 자를 발견한다. 그 책에서는 참자아(True Self)라는 용어로 나온다.
그는 명상을 통해 결국 마음의 소리 너머에 있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너는 너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알고 싶지 않은가?
그가 거쳐온 명상을 통한 깨달음 과정은 명상을 모르는 나에게는 복잡하고 말로 설명하기에는 다소 심오하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서는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아를 통합해 나간다.
내가 지켜보고 판단해왔던 내면의 저 두려움 많고 문제적인 인물이야말로 실로 하나의 인격체, 사람이라는 자각이었다. 마음/정신(Psyche)은 느낌과 생각과 희망과 두려움과 꿈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사람이다. 그런 그를 방 안에 가둬두고 끊임없이 입 좀 다물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불안하고 자기중심적인 이 에너지를 훨씬 더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교훈을 아주 어렵게 깨달아야만 했다.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123page)
불청객처럼 급습한 기업 경영의 위기에서도 그는 내맡기기 실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의 태도는 진정한 삶의 출발점은 진실한 자기이해의 과정이 없이는 시작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뿐이다.
기쁨과 고통,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던 것들을 잡아당겼다. 더 많이 놓아 보낼수록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것을 찾아내는 일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몫이었다. 내 안에서 무엇이 올라오건 기꺼이 놓아 보내는 것, 그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396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