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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새결 Jul 11. 2024

저는 월요일이 정말 좋아요

자우림, <Pysco heaven>

불현듯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가 있다. 사실 9-6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겐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요하다 못해 냉기가 도는 사무실에서, 무의미한 'ㅋㅋ'를 섞으며 업무 채팅을 하다 보면 말이다. 가끔 메서드 연기 모드가 되어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다들 조금씩 미쳐가는 건가 싶다.


아무도 이상하지 않은 건가?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나로부터 유리되어 있는데 어떻게 모순이 없는 건지 기적에 가까울 정도다.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있으니 주 자아가 아닌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직장은 불합리한 각본과 허술한 풍선 인형들로 꾸며진 기묘한 연극이다.


아무리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도 심각하게 대응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요샛말로 '기존쎄', '맑눈광' 모드로 대처하길 바란다. 만일 당신이 풍선 인형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 그곳에 존재하면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웃을 때 따라 웃지 못하고 나름대로 무해하던 인형들이 좀비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블랙 코미디로 만들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04pBxi1es


빈 말이 아니라 이 노래는 7초만 들어도 톤 앤 매너를 알 수 있다. 마치 어릿광대가 들어오는 듯한 익살맞은 효과음이 전주를 가득 채운다. 가사가 시작되기 직전 두 번의 박수소리도 연출된 듯한 과장스러움을 더한다.


커다란 정원과 기다란 지붕
하늘 아래 사고파는 꿈
더러운 질문과 불안한 미소
어둠이 더 궁금한 이유


이번에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하늘 아래 사고파는 꿈'이라니. 연봉에 대한 묘사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경험 상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은 꿈의 크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면접을 볼 때마다 이상주의로 포장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포장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상한 꽃 수상한 약 봉다리
그대를 환영해요 psycho heaven
좋은 아침 고작 한다는 농담이
신도림역 안에서 psycho heaven


이상한 꽃? 약 봉다리?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고백하건대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어떤가. 여기는 미친 자들의 천국인데. 좋은 아침과 신도림역을 조합하면 출근길이 연상된다는 것만 짚고 넘어가자. (언뜻 자우림의 <일탈>이 떠오르기도 한다.)


적당한 거짓말 엉뚱한 변명
마지막은 진검승부
언짢은 눈빛 깜빡이는 불빛
어둠이 더 궁금한 이유


회사에서는 눈치 없는 척하라는 조언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명령에 '뀨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스킬을 가진 자, 뒤에서 씹힐지언정 앞에서는 굴하지 않으리라. 대번 언짢아지는 눈빛에 오히려 흥미진진해하고 있는 화자는 진정한 기존쎄이다.


웃음소리 소름 끼치는 한 마디
그대와 함께하는 밤은 feel good
이상한 꽃 수상한 약 봉다리
My baby, welcome to the psycho heaven


감히 추측하건대  한 마디는 '야'로 시작해서 '근'으로 끝나는 두 글자 단어일 것이다. '그대와 함께하는 밤은 feel good'이라니 그야말로 광기에 찬 유머 감각이다. 이쯤 되면 안 웃고 싶어도 감탄스러움에 웃음이 날 지경이다. 이런 동료를 두었다면 회사 복지 사항으로 넣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튼 welcome to the psycho heaven이다.




가사가 없어서 넣진 못했지만 이 노래의 정수는 2분 30초부터 시작되는 간주이다. 마치 모기가 윙윙거리는 듯한 빠름으로 '사이코'를 되뇌는데 점점 그 단어들이 중첩되며 종국엔 뇌를 장악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머릿속을 가득 채우다 오락실 뿅뿅 소리로 깔끔하게 지워진다. 단지 이 모든 게 게임일 뿐이라는 암시를 주어서 피식 웃음이 난다.


매사 진심을 다하고 진중한 사람들은 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당부하고 싶다. 인간에겐 결핍이 있고 직장은 기형적인 환경이다. 모난 돌들이 마구 흔들리는 상자에서 옥구슬은 부서지기 쉬운 약한 돌일 뿐이다. 적어도 깨지지 않고 그곳을 나와야 햇빛 아래에서 청명한 색채를 드러낼 수 있다. 비록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취급받지만 그 절대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내일 눈을 뜨면 사무실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곳에서 또 어떤 기묘한 일을 겪을지 기대가 된다. '기대'라니. 이런 훌륭한 반어법을 쓰는 걸 보니 벌써 노래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역시 한바탕 웃고 나면 숨 쉬기가 편해진다. 가슴을 꽉 막고 있던 것들이 모두 씻겨나간 기분이다.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말고 익살스럽게 나아가보자. 여기가 <psycho heaven>이라는 걸 알고 있는 한 당신이 미칠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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