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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당신은 하나가 아니다

김예지, <SHE IS MINE> 외 1곡 / 영화 <서브스턴스>

by 흰새결

여기 당신이 도전해 볼 만한 실험이 하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맞으면, 모든 이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새로운 몸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일주일 간격으로 몸을 교대해야만 한다. 실험을 주최한 이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인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신이 주신 기회인지, 악마의 유혹인지 알 수 없는 제안이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니. 방금 지나간 문장을 부디 기억해 주길 바란다. 어느 쪽을 선택하냐에 따라 결말은 달라질 테니 말이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소개는 이와 꼭 맞춘 듯한 노래와 함께 흘러갈 예정이다.




https://youtu.be/h5kJMm6JD-c?si=ZcQNuCUxpIey0ifC


김예지의 <SHE IS MINE>은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된다. 뮤비에 나오는 하얀 길은 사실 단차가 높은 구조물이기에 밖으로 벗어나면 추락하게 된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르게 될 위태로운 시험대를 연상시킨다.



엘리자베스는 한때 톱스타였지만 세월이 흘러 방송계에서 입지를 잃어간다. 눈앞에서 '퇴물' 취급을 받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미심쩍은 약물을 제안받는다. 주사를 맞은 엘리자베스는 '수'라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고 일주일씩 몸을 바꾸며 살아가게 된다.



적당한 유머러스함
고운 피부에 붉은 뺨
그녀의 아름다움에 모두 감탄하게 되지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수는 원하던 모든 것을 얻으며 기쁨을 만끽한다. 비록 일주일이면 엘리자베스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쯤은 감수할 만하다.


She's mine
She's mine
She's mine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미묘한 발음 차이다. 뮤비가 아닌 정식 음원 버전을 들어보면 m보다 f에 가깝다. 아직 타자의 시선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은 그녀는 주체로 남아있다(She's fine).


하지만 이 균형은 금방 무너진다. 의식을 공유하더라도 분리된 두 개의 자아가 서로를 위협한다. 수는 기한을 넘겨 몸을 쓰기 시작하고,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수가 아닌 자신을 참아내지 못한다.



맞지 않는 작은 옷에
애써 자신을 가두지
그녀는 불안하다가도
그의 품이 안락하대


엘리자베스는 무시할 수 없는 경고음을 듣지만 '그의 품'은 너무도 안락하다. '그 예쁨'이 주는 혜택을 버리라는 건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라는 것과 같다. 이때를 놓칠 새라 그녀를 지켜보던 타자의 시선이 속삭인다.


이보다 좋을 수 있겠어


그래, 수는 이 목소리가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다. 타자로부터 인정받는 욕구를 버리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수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 부작용으로 몸을 깨워버린다.


내가 누군지도 모두 잊어버렸어
But I don't care
It doesn't matter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 수는 엘리자베스를 살해하고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향한다.


그런 모습 따위 감춰버리면 돼
All I need is you anyway


하지만 본체의 척수액이 없으면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생으로 치아가 빠지는 공포를 겪으며 수는 처음 자신이 탄생했던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길 바라며 다시 한번 약물을 투여한다.


눈을 떴을 때 엘리자베스와 수는 드디어 한 몸이 되어있다. '엘리자수'라는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She's mine
She's mine
She's mine


만족스러운 결말을 손에 넣은 타자의 시선이 의기양양하게 뇌까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인생은 그의 것이었다고.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했던 엘리자베스와 수는 처참한 끝을 맞았다. 그렇다면 자아를 유지하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 걸까? 여기에서 숨겨두었던 함정이 드러난다. 그들이 공존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인간이 '자신'이라 인식하는 범위엔 신체가 포함된다. 일주일 주기로 몸을 바꾸며 자아를 유지하려면 근원적인 인식 체계를 버려야 한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보려 한다. 이 실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처음 그녀를 '엘리자베스'와 '수'로 쪼갠 건 약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여배우에게 점점 차가워지는 현실이 숨을 조여왔다. 커리어적으로 젊은 여배우만 대우받기에 자연스럽게 노화되는 '엘리자베스'가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나'가 생겨났다.


무자비한 실험을 계속하는 이들에게 전할 희소식이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자아가 분열되지 않을 사람을 찾는다면 소개해줄 수 있다. 다만 조심하길 바란다. 그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사회의 시선에선 차라리 괴물에 가깝다. 마치 영화의 끝에서 관중의 손에 살해당한 '엘리자수'처럼. 물론 그렇게 순순히 죽어주진 않겠지만 말이다.




https://youtu.be/WeUf6hYGvqM?si=_I7o4aEOlapYbn-I


<Experiment on Me>는 도입부터 마구잡이로 튀는 전자음이 심장을 서늘하게 한다.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나 오토바이의 배기음,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이 뒤섞인 듯하다. 이어지는 가사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지만, 모든 설득력은 보컬이 담당한다.


You dig up so many stories
(너는 말이 너무 많아)


오, 첫마디부터 꽤 흥미롭다. <SHE IS MINE>에서는 쉴 새 없이 들려오던 타인의 목소리가 쭈그러든다. 여기에서는 그 말들이 별 의미가 없다.


I'm pretty like a car crash
(나는 자동차 충돌 사고처럼 예쁘고)
Ugly as a lullaby
(자장가처럼 추해)


비슷한 심상을 가져다 쓰는 직유법으로선 완전히 실패했다. 심지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감받진 못하더라도 화자의 내면에서는 진실이다. 느끼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본인이 가진 양면성을 끌어안는다.


You be the lamb,
and we'll be the slaughter
(넌 양이 되고, 우린 도살자가 될 거야)
You've burned the witches,
(네 손으로 마녀를 불태웠으니)
now you're defenseless
(이제 너는 무방비한 상태네)


여기서 그의 말이 왜 무가치해졌는지 알 수 있다.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은 쉽게 마녀가 되었다. 그렇게 마녀를 불태웠기에, 이젠 양이 되어 도살당할 차례가 왔다.


Experiment on me
(나에게 실험해 봐)


연달아 7번 반복되는 가사는 뒤로 갈수록 절규와 뒤섞여 형체를 잃어간다. 한껏 기대하는 것 같기도, 극도로 혐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화자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순한 편견으로 자아 분열을 겪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악의를 가진 이들은 일부러 쪼개지길 바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자아상이 평면적일수록 행동 패턴은 단순해지고, 틀에 벗어나지 않도록 검열을 반복하며, 그만큼 평가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입맛대로 다루기엔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이런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무수히 많은 '나'가 심연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불쑥 낯선 감정이 밀려들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조금씩 자아상을 수정해나가야 한다. 물론 모순투성이인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니 이번엔 당신이 선택한 실험을 해보도록 하자. 극단적 분열인 <SHE IS MINE>과 집요한 자기 수용이 넘치는 <Experiment on Me>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통합을 원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연결 짓고 혹은 거부할지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사실 그때 나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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