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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라고 말하면서

김사월, <세상에게>

by 흰새결

불과 2년 전, 짧은 간격을 두고 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하나는 대학 동문들끼리 사업 아이템을 발표하는 자리였고, 다른 모임은 비영리단체에서 만난 은사님이 주최하신 서평회였다. 이 둘은 모임의 목적부터 참여자의 성향까지 완전히 딴판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탄소 중립'이라는 주제가 모두 도마에 올랐다.


당시 서평회에 계시던 환경운동단체분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 마음속이 분노로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분이 말씀을 끝내셨을 때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왜 탄소중립으로 사업을 하지 않으시나요? 어차피 누군가 이득을 볼 거라면, 환경단체가 파이를 가져가는 게 낫지 않나요?"


대학교 소강당에 모여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환경이 파괴될수록 국제 법 조항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걸 어떻게 이득으로 바꿀 수 있는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억 단위로 오가던 숫자들 앞에서 비영리단체의 자금 부족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목적과 부합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아니, 영영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때의 나는 환경운동이 아닌 다른 목표가 있었지만 그와 비슷한 억울함에 휩싸여 있었다.




https://youtu.be/ij51c3i1BpM?si=Z_JlCitkGnXE-3Qy


김사월의 '세상에게'는 한 번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다. 그래서 일정한 박자로 이어지는 가사가 더 깊게 박혀든다. 처음 운을 떼는 세 음절이 다정하고도 쓸쓸하다.


있잖아
여기서 일 년 전 이때쯤에
우린 세계 일주에 대해 말했고
캣파워를 듣고 있었지


지금은 그때도 우리도 남지 않고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발자국만이
세차게 울리고 있어


눈 뜨면 내 목을 조르는 영수증에
네가 건네준 1달러도 그저
돈이 돼버리는 게 너무 싫어


이제야 깨달았지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뿐이라는 걸


네가 건네주었던 건 분명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을 텐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 숫자를 바라보게 된다. 의미가 지워진 1달러는 초라할 만큼 작은 돈이 된다. 그게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늦은 시간까지 은은한 조명이 비추던 비영리단체의 공간은 일순 조용해졌다. 그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고 다만 눈을 마주 보셨다. 분노도, 당황도 아닌 고요한 감정이 전해졌다.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자리가 끝날 무렵 경솔함을 사과드렸다.


이후로도 문득 그때의 눈빛을 떠올렸다. 모든 걸 포기하고 망쳐버리고 싶을 때마다, 어떤 말을 전해받았던 걸까 생각했다. 차츰 비어있는 칸에 답을 채워나갔다. 기어이 원하던 자리에 오르고 나면 과정에서 훼손된 신념 정도는 금방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오만함에 대해서. 그렇게 오른 위치는 이제까지와 다르게 행동하려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었음에도.


그러나 세상에게 인정받는 가치를 손에 넣었을 때 얼마나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역시 잊지 않았다. 이 둘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온전히 과정을 지키며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그 길은 너무도 좁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느 쪽을 얼마나 포기할지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정을 먼저 포기하고 싶지 않다. 분명히 다른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더 많은 관점을 획득하고 고민하다 보면, 다른 걸 내주어서라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주류가 되는 것도 지나친 이상주의만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장 세상이 끝난다 하더라도 가던 방향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그런 마음도 목적이 되길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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