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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새결 Sep 19. 2024

네가 떠난 강가를 다시 생각한다

호프 에덜먼, <슬픔 이후의 슬픔> / 이소라, <Track8> 외 1곡

오래전부터 강을 건너는 것으로 비유되 일이 있다. 멀지 않은 건너편을 맨몸으로는 넘을 수 없고 떠나는 이에게 말을 전하고 싶어도 소란한 물소리에 가로막힌. 그가 홀로 걸어야 할 길을 떠올리며 서성이는 발길은 떨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힘겹고 더딘 시간이 지나야 그곳에서 돌아설 수 있다.


납득할 수 없는 부재가 미치는 영향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까지 조각조각 해체시킨다. 그가 등장하던 일상은 일순간 개연성을 잃고 추락한다. 내가 아는 그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그를 모르는 나도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비틀거리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https://youtu.be/FMl_LCo5l4s?feature=shared


이소라의 7집 앨범에 수록된 <Track 8>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엘리엇 스미스를 추모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암시하듯 뮤직비디오 초반에는 공포심을 자아내는 사운드와 연출이 추가되어 있다. 곧 무거운 주제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드럼과 나지막한 피아노 소리가 이어진다.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술에 취해 말하는 노래
간절히 원해
wanna stay with you oh tonight


살아있지 못하고 술에 취해 있는 '그'는 양쪽 모두를 지칭할 수 있다. 일상을 깨뜨리는 균열 속에서 <Track 8>은 생사를 가르는 강가를 건너 서로를 부르는 노래가 된다. 함께 있고 싶다는 가사가 떠난 이의 외로움이자 남겨진 이의 그리움이 다.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꼭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반복되며 깊은 회한과 괴로움을 표현하지만, <Track 8>이 전하고자 했던 건 슬픔만이 아니다. 

 한 문장만 고를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적어낼 부분이 있다.


죽음보다 네가 남긴 전부를 기억할게


미처 아물지 못한 결의를 품은 채, '슬픔 이후의 슬픔'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호프 에덜먼의 <슬픔 이후의 슬픔>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설명한다. 갑작스러운 사별을 비롯한 심리적 외상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당사자가 실제로 겪은 일과 그 일로 인한 내면의 고통을 통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승전결이 완성된 한 편의 서사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온전한 치유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초반에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몹시 고통스러운 서사를 가진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행복했기에, 그를 잃어버린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다. 이처럼 '이전'과 '이후'를 극단적으로 단절시키는 서사를 '오염 서사'라 부른다. 반면 이와 대조되는 서사도 존재한다. '구원 서사'는 상실에도 불구하고 삶은 본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았다고 설득한다.


구원 서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고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사건을 미화하거나 축소하는 게 아니라 여러 관점으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객관적인 자료나 타인에 대한 연민 등이 이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준다. 파편화된 사건을 재구축하며 새로운 조각이 더해진 이야기는 보통 좀 더 따스하고 포용적인 시각을 가진다.




https://youtu.be/DjrXuYnIP3M?feature=shared


마찬가지로 7집 앨범에 수록된 <Track 10>은 온화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진 10월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할로윈 축제날이야 환하게 웃는 날이야
Folks, trick or treat 외치면
두 손 가득 달콤한 사탕과 정 넘치는 날


한 치의 고독도 없을 듯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미소를 짓고 있다. 제멋대로 꾸민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유년기를 추억한다.


새해를 맞는 날이야
먼 옛날 어느 부족들은 여름의 끝인 10월의 끝이 한 해 끝이었대


할로윈 데이는 한 해의 마지막이자 죽은 자들이 돌아다니는 날이었다. 망자들을 속이려 분장을 한 채 하루를 보내고 나면 새해가 시작되었다. 타로에서 13번 '죽음' 카드가 필연적인 끝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게 연상된다.


오늘은 잠든 영혼들도 나와
사람들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날
살아있는 게 다 반가워지는 날


이 부분은 영화 <코코>가 떠오른다. 저승으로 떠났던 이들이 다시 되돌아와 사랑하는 이들과 축제를 즐긴다. 주황색 꽃잎과 기타 소리, 그 위에서 자유롭던 춤사위가 삶과 죽음을 모두 긍정한다. 함께했던 추억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Rest in Peace




단순한 우연일 수 있지만, 이 두 곡 사이에는 <Track 9>이 있다. 7집 앨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 노래의 주제는 살아감, 그 자체이다. 세상은 결코 친절하지 않고 예측불허인 불행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강해지며 나 역시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단지 조금 멀어져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흔히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기에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가치관이 바뀌면 상실에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후의 삶으로 가는 전환점이 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만일 누군가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했다 해도 그건 당신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하물며 구원 서사를 완성한 이후에도 그를 떠올릴 때마다 잔잔한 슬픔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침내 알게 된, '그가 내게 남긴 전부'는 너무도 찬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무언가가 우리 마음에 생긴 구멍을 완전히 메우더라도 그건 다른 무언가일 뿐이야.
그리고 사실 그게 당연하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랑을 꼭 붙들고 있으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으니까.


Track 8의 그림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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