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그 문제는 선생님이랑 같이 풀었어요.
문제집에 표시된 틀린 문제를 보고 이젠 풀 수 있냐고 물어보면 쉽게 듣게 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의 속내는 이렇다.
'그 문제는 선생님이랑 같이 풀어봤으니까 다시 안 풀어도 돼요.'
'한 번 더 풀어 봤다고요.'
나는 풀어낼 수 있는 미래의 능력을 묻는데, 아이들은 자꾸 풀어본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넌 이 문제를 또 틀리겠구나.'
실력은 자세에서
지필고사라고 하는 중간, 기말 시험은 지역별, 학교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그 점수를 실력의 척도로는 신뢰하지 않는다. 변별력을 요하는 문제를 충분히 넣은 다른 테스트나 모의고사 등급을 확인하는데, 그 결과에 근거하여 학습태도를 유추해 보면 거의 정확하게 맞다.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전국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등급별 평균적인 학습태도(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임)를 적어보면,
1등급( ~ 4% 이내) : 틀렸던 문제에 집중한다.
2등급( ~ 11% 이내) : 틀렸던 문제도 풀어본다.
3등급( ~ 23% 이내) : 숙제는 열심히 한다.
4등급( ~ 40% 이내) : 숙제를 한다. (덜하거나 다하거나.)
5등급( ~ 60% 이내) : 숙제를 해 본다. (안하거나 덜하거나.)
6등급( ~ 77% 이내) : 숙제를 알고는 있다. (거의 제대로 안한다)
이하 생략.
풀어본 문제집 제목이나 풀어본 권 수로는 학생의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학생의 태도로는 명확하게 실력을 판단할 수 있다. 어떤 문제집을 몇 권 풀었냐 보다는 어떤 학습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실력을 결정한다. 그러니, 정말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잘하는 학생이 풀고 있는 문제집을 사서 풀거나 그 친구가 다니는 학원을 따라 다닐 필요가 없다. 그 학생이 공부하는 방법을 따라 하면 된다. 방법은 위에 다 적었다.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 빤한데, 왜 잘 안 되는 것인가? 이유는 공부에 대한 관성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하던 학생은 그냥 계속 안 하는 게 편하고, 하던 학생은 안 하면 불안해서 계속 열심히 하게 된다.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막상 마음을 고쳐 먹고 공부를 시작해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게 된다. 힘들지 않고 어떻게 실력이 좋아지겠는가. 진짜 실력을 올리고 싶다면 적어도 학교 지필고사 간격인 2~4개월은 똑바로 해봐야 한다. 그렇게 해보고 포기를 해도 해라. 정말 그렇게 한다면 아마 올라간 성적에 기분이 좋아서 더 공부하게 될 것이다.
연필 그리고 머리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의고사 2, 3등급 학생들의 가장 큰 약점은 틀린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린 문제를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대충 그 자리에서 한 번 풀어보고 다시 풀어보지 않는다. 1등급 선두에 있는 학생들은 다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그 외 등급의 학생들은 풀어봤다는 경험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장의 환경을 생각해보자. 힌트를 주는 선생님도 없고 책을 찾아볼 수도 없다. 결국 혼자다. 그러니 평소에 공부할 때 연필과 자신의 머리만으로 끝까지 풀어내는 자세가 충분히 몸에 베어야 한다.
초, 중등 학생들의 경우 집에서 풀었을 때에는 잘 틀리지 않는데, 테스트에서는 평소보다 많이 틀린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숙제를 채점하면 별로 틀리지 않는데, 시험을 치면 많이 틀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왜 그럴까? 이는 문제를 푸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집에서 문제를 풀 때에는 충분한 시간에 모르는 부분을 찾아보면서 풀 수 있다. 또, 답안지를 참고할 수도 있다. 모르면 찾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풀어서 답은 맞혔지만 정작 풀기 위해서 찾아본 내용은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숙제니까.", "답만 찾으면 되는 거니까."라는 자세로 풀어본 문제는 다음에 틀릴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영어에 비교하면 모르는 단어나 문법을 찾아보고 문제는 풀었지만 암기는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다시 틀린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숙제를 안 하던 학생이 갑자기 숙제와 복습까지 다 할 수는 없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는데 뛸 수는 없지 않은가. 숙제를 대충하던 학생이라면 조금씩이라도 더 해서 다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성실하게 숙제를 하는 것이 몸에 베어야 복습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공부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있다. 갑자기 머리가 더 좋아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핵심은 모르는 것을 줄여나가는 것이고, 수학에 있어서 그 방법은 필요한 만큼의 꼼꼼하게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를 완벽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한 발짝이라도 스스로 내디뎌야 목적지에 가까워질 수 있다. 공교육, 사교육을 막론하고 교육은 방향을 인도하는 것이지 목적지에 대신 가주는 것이 아니다.
목적지에 가려면 한 발짝이라도 스스로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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