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RNCH에 게재한 모든 글은 "공부를 무조건 잘해야 한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였음을 명기합니다. ]
유명 교육 관련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이곳 BRUNCH에도 발을 뻗은 것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단절된 지식을 연결해 보자는 의도였다. 매년 반복되는 질문에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였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 또한 교육 관련 글에서 지금껏 손을 떼지 못하는 큰 이유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급변하는 첨단 기술처럼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로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부모학교" 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었다. 정해진 공식이 있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론 VS. 현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엄마는 모임에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 성적, 문제집, 진도, 학원과 같은 피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것이 준-공식쯤 된다고 생각하고 따라 한다. 진도를 그렇게 하고, 학원도 바꿔 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좀 더 원론적으로 접근하여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줘도 결과는 마찬가지. 실력이 부족한 이유는 아이가 공부를 충분히 안 하는 것 때문이지 방법을 모르거나, 학원이 이상해 서가 아니다. 그러니, 그깟 공부방법 하나 알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안 하던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데 필요한 부모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다. 책에서 일러주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책은 나와는 먼 아무개 전문가의 한 이론일 뿐이고, 주위에는 실제 사례가 넘치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이와 남편을 보내고 카페로 모여드는 엄마들에게서는 온갖 사례들이 쏟아진다. 자신의 이야기든 어디서 들은 이야기든 모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생산되고 빠르게 퍼진다. 거기에는 성공과 실패(더 잘 어울릴만한 단어가 없어서 사용함을 이해 바랍니다.)가 항상 공존하지만 엄마들은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하기보다는 오직 성공 사례에만 집중하고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관성.
공부에도 관성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급격한 변화가 없다. 잘하던 아이가 계속 잘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극히 일부가 갑자기 관성에 역행하기도 하는데, 그 방향이 순방향 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공부를 안 하던 학생이 하기 시작하면 기뻐할 일이지만, 잘하던 학생이 갑자기 안 하면 부모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봤더니 너무 일찍부터 공부에 올인해서 소위 번아웃(Burn-out)된 상태 거나, 학원(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의 형태를 대표로 사용함.)의 개수가 갑자기 늘어난 경우가 많았었다. 전자는 아이의 학습 의지가 완전히 꺾인 상황이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고, 후자는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좋다. 늘어난 학원에 대한 적응 기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그렇다면 말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부모의 욕심으로 더 밀어붙인다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수년 전, 능력을 넘어선 수준의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근데, 돌아오는 말은 "이 동네는 5개가 기본이에요."였다. 개수가 그렇게 중요한가? 누구에게 기본인가? 2과목도 겨우 감당하는 아이에게 남들 다 한다고 4~5과목을 시키면 어떻게 되겠나. 남의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지 말고, 내 아이가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주변만 따라 할 경우 결과가 좋을 수 없다. 돈 들여 열심히 시켰는데 결과가 좋지를 않으니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결국 서로의 관계까지 나빠지게 된다.
별일 없이 잘 다니던 학원들에서 상담전화가 자주 오기 시작하고,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것이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을 개선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스마트폰 압수], [게임 금지] 등의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치들은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악화시킨다. 다짜고짜 결과에 대해 야단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너 요즘 많이 힘드니?", "혹시 학원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정말 다 할 수 있겠어?" 하고 물으면서 아이의 생각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원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으로 어떻게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는가. 원인을 분석해야 그에 맞는 대안이 나올 수 있고, 실행하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상황도 빨리 개선될 수 있다.
방향
"도대체 숙제는 언제 할 거니?", "숙제는 다 하고 게임하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면 이미 서로의 관계가 아주 좋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원인이라 말하지만, 아이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니 잔소리를 듣고 부모가 원하는 태도로 바뀔 가능성은 적다.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무작정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 반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떻게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냐고 반문할 것이다. 나도 묻고 싶다. 잔소리를 하면 상황은 좋아지는가? 아이의 사생활을 제한하면 자세가 달라지는가?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잔소리로는 더 나아질 것이 없기에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책상 앞에 간들 공부가 똑바로 되겠나. 결국, 공부하는 시늉만 하게 될 것은 뻔하고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실력이 좋은 학생은 한 학원을 오래 다니는데, 그러면 자연스레 학생의 부모와도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그렇게 10년 이상 관찰을 했더니 성적이 좋은 학생은 대부분 부모와 사이가 좋았다. 성적이 좋으 학생뿐 아니라 성적이 점점 좋아지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잘하니까 사이가 좋은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공부를 잘하면 사이가 좋고, 못하면 나쁜 건 정상인가. 공부와 상관없이 사이는 항상 좋은 게 정상이다. 잘 생각해보시라. 아이가 어릴 때에는 그렇게 좋던 사이가 자라면서 학습이 침범하면서 나빠지지 않던가. 그러니 학습이 시작되어도 우선순위는 학습이 아니라 관계여야 하고, 그 관계는 항상 좋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마음은 다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음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강해진다. 그에 따라 태도도 달라진다. 중학생 때에는 그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없지만 고등학생 에게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의 학업 스트레스가 많지 않았던 학생들이었다. 눈에 거슬릴 때 잔소리를 해 버리는 것이 제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꾸역꾸역 삼키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렇게 노력해서 보호해 준 '자존감'이 때가 되면 스스로를 움직이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명확한 방법을 시원하게 알려줄 수는 없다. 그저 방향을 일러줄 수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성향과 성격이 다 다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잘 조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사이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가 좋으면 학업도 좋을 가능성이 커진다. 설사, 학업의 결과가 만족할 만큼이 아닐지라도 좋은 관계는 남는다. 하지만, 사이가 나쁘면 최선의 경우 학업 하나 잡게 되는 것이고(물론 그 가능성도 낮다.), 둘 다 놓치게 될 가능성은 더 크다.
그러니,
'공부'와 '관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조건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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