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처음 꿈꾸었습니까?
You become what you believe.
당신은 당신이 믿는 만큼 된다.
-Oprah Winfrey-
지금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여행을 통해 모두의 이야기임을 깨달았기에
지금은 내 이야기만이 아닌
당신의 이야기가 될,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이 열흘 이상의 긴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다. 스페인에 가고 싶었던 건 대학에 들어온 스무 살부터였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내 버킷리스트 1순위였던 나라.
무기력조차 녹여버리는 뜨거운 태양, 열정의 플라멩코, 삶을 음미하는 스페니쉬 라이프 스타일.
스페인을 수식한 모든 말들이 가슴을 뛰게 했다.
언젠가 꼭 간다. 가고 만다.
그 당시 대학생인 내가 스페인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소위 말하는 아빠 찬스 아니면 휴학해서 몇 달씩 알바해서 돈을 모아 가는 것.
실제로 당시 방학이 끝나고 나면 아빠 찬스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꽤 있었다.
부러웠다. 진심. 얼마나 좋았을까.
어땠을까. 스페인은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들었어?'
'한 달 다녀오는데 한 오백 정도..?'
... 5,000,000..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액수에 '나도 한번..'이란 생각은 겸손하게 고이 접어 넣었다. 참고로 당시 첫 카페 알바의 시간당 페이는 2500원 이였다. 하루 8시간씩 한 달 일해 받은 알바비 48만 원 남짓,
좀 더 현실적인 시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학생 땐 시간이 많아도 돈이 없어 못 가고,
직장인이 되면 돈이 있어도
시간이 안돼서 못 가는 거, 그게 유럽여행이야'
사회에 먼저 나간 선배의 푸념을 듣다 보면 정말 못 가게 될까 봐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나.. 갈 수 있을까...?'
시도는 했다. 지원을 받아 갈 수 있는 몇 명 뽑지도 않는 국제봉사활동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누가 알아? 내가 될지도..'
살포시 기대를 안고 제출한 서류가 통과해 면접 자리까지 왔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영어를 쥐어짜고 또 쥐어짜 면접에 나올만한 질문과 대답을 달달 외웠다.
'반드시 내가 간다'라는 표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 틈에서 '기죽지 말자, 나라고 못할 것 없다'속으로 되뇌는데 첫 질문을 받은 사람이 감명받은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데미안을
우리말 하듯 줄줄 읊어대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영어를 굉장히 잘 하네요.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어요?'라는 질문에 '아 영국에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라고 한다.
어쩐지.. 괜찮아 저 사람은 특별히 잘하는 사람인 거야, 나도 할 수 있어..! 겨우 맘을 추스르는데,
그 다음 사람, '예.. 저는 호주에서..', 다음 '예,,, 저도 호주에서 2년간..' '네,, 저는 뉴질랜드에서 1년간..' 어쩜 약속한 듯이 나만 빼고 다들 다녀오셨는지, 국제 봉사활동은커녕, 그래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영어에서 쭉쭉 밀려난 기분으로 돌아와야 했다.
'두고 봐, 연수 안 가고도 언젠가 영어로 줄줄 말하고 말테다..'
영어에 대한 오기만 남긴 채 대학생활이 끝나고 진로와 취업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내 책상 하나 마련하고 한숨 돌리고 나니 사회인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 언제 스페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