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에는 타이밍이란 게 있어 그때 못하면 영원히 못하게 된다.
이 티켓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긴 시간을 돌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티켓 한 장.
나에게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낸 훈장 같은 한 장.
처음 이 티켓을 받아 들었을 때의 뭉클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정말 드디어 가는 건가? 꿈같다. 그리고 더 이상 꿈이 아니라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너무 대견하다. 기어코 이루어냈구나.
그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일을 시작하면서 책상과 침대가 맞물리는 작은 고시원 방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월급통장에 찍힌 소박한 첫 월급을 시작으로 1년 반 남짓 모아 그 보다 조금 더 큰 방으로 이사했다. 한 때는 뜨겁게 연애도 하며 끓었다 식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렸다. 그것도 지나선 황금연휴, 징검다리 휴일은 출장으로 반납하고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직장인 1년, 2년.. 3년... 5년 차를 넘어섰다.
어느새 서툴고 뜨거웠던 이십 대도 저물었고 경험한 적 없는 서른이 시작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어렸을 때 서른쯤엔 뭔가 다 결정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살아보니 인생은 순간순간이 선택과 고민의 연속인 것을.
어려서부터 호불호가 너무 강했다. 좋아하는 건 꼭 티를 내고 손에 쥐어야만 했다.
자전거를 가지고 싶은데 아직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사주시지 않는 아빠 보란 듯이 앞 동 사는 친구 집네 발도 잘 안 닿는 자전거로 넘어지며 온 무릎을 다 갈고서야 "아빠, 나 이제 탈 수 있어~ 사줘요!"했다.
처음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땐 친구네 방에 떡하니 있는 피아노가 너무 멋져 보였다. 그날 이후 스케치북 종이에 건반을 대충 그려 아빠만 보면 앞에 앉아 입으로 띵땅띵땅 소리를 내며 눌러댔다. 그로부터 1년 후 빠듯한 살림에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가 내방에 왔다. (비록 2달 만에 큰 장식물이 되었지만)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신 아빠께 심심한 사죄와 진심의 감사를.
싫어하는 건 단 10분도 하기 싫었다. 수학이 그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시는 노총각 학습지 선생님께
"선생님, 살면서 부채 넓이 궁금한 적 있으셨어요? 없죠? 그럼 부채꼴 넓이는 왜 구해야 돼요?"라는 피곤한 질문들을 이어가며 어떻게든 그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그 성격 어디 가겠나.
여행을 가야겠다고, 더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나이에 이 젊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릴 때처럼 대책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이제는 행동에 따르는 결과 조차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에 오랜 시간 나와 대화했다.
1. 여행 경비는 얼마를 잡을 것인지
2. 일을 그만두면 여행 후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
3. 일을 쉬는 동안 한 달에 필요한 고정비
4. 여행을 갔을 때와 가지 않았을 때의 기회비용
5.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의 홍수에서 진통을 겪고, 분류를 하고, 결과를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나이와 용기의 양은 반비례 하나보다. 그제야 알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모르는 사이 엄청난 겁쟁이가 돼버린 나란.. 사람.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내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들이 찾아왔다.
여느 날처럼 출근해서 회사 서류에 습관적으로 날짜를 적고 있었다. 2014년 11월 00일.. 순간 왜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그런 적이 없었다. 꿈꾸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맨 정신으로 2024년을 쓰는 내 손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현상. 순간, 그 시간에도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있다면 정말 후회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랬다면 2024년 어느 날 퇴근 후 저녁, 술안주 거리 삼아 이렇게 얘기하겠지.
'아.. 시간 정말 빠르다. 그때는 뭔가 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릴 줄 알았다면, 그때 움직일 걸. 참 이른 나이였는데..'
그러곤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가 '나도 그냥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다 그런 거지 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당기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겠지. 왜 그런 생각들이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줄줄이 떠올랐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그냥 흘려보낼 만한 무게의 상상 나부랭이는 아니었다는 거다.
주말이면 가까운 교외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거나 시간이 더 나면 제주로 떠나기도 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떠나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처음 한두 번은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니 그 이상은 해소가 되질 않았다. 다녀와도 막막하고, 해결되지 않는 똑같은 아침, 똑같은 일상.
무기력이 찾아왔다.
더 무서웠던 건 그런 상태가 길어지자 스스로도 그냥 그 정도에 적응하는 듯했다. 복잡한 생각 따위 접고 싶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즐거움만 쫓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왔다.
한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의 너무도 이른 마지막을 예고하는 소식.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사는 우리의 마지막. 순서가 없다는 마지막이 피부로 와 닿던 순간이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그녀를 보러 가서도 심지어 그녀가 없는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사실. 마지막을 떠올려보니 그동안의 복잡한 생각들은 고민의 과정이 무색할 만큼 간단하게 정리됐다. '뭘 하느라 그렇게 가보고 싶던 스페인도 못 가봤네.. 뭐가 그리 바빴을까...' 적어도 이런 후회를 하며 눈 감고 싶진 않았다.
언제 부터인가 나는 우리 삶의 길목마다 인생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걸 알고도 그냥 지나치고, 어떤 사람은 그걸 계기로 다른 길을 걷고자 결단한다. 선택은 물론 개개인의 몫이다. 어떤 게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지난시절 어느 날, 고민하는 내게 누군가가 툭 던져준 한마디가 유일한 내 비빌 언덕이다.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일까. 네가 선택한 것을 옳은 선택으로 만드는 것,
그게 좋은 선택이지.
선택에 핑계를 대지 않고, 오롯이 선택 이후의 내 스스로의 노력에 중심을 두는 것.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후자의 선택은 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생각나는 김수영 작가의 말.
"일 그만두고 여행 가면 나중에 뭐 먹고살아요?"
"저는 제가 나 한 사람 못 먹여 살릴 만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나를 굶기진 않을 거라 믿기 때문에 괜찮아요"
지금 누리는 작은 호사를 놓지 못해 매일매일을 무기력하게 나이만 들고 싶진 않다.
얼마나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퇴사의 결정을 말씀드리기 위해 상사와 면담을 신청했다.
내 생에 이렇게 어려운 말은 처음이었다.